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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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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서경수
Subject   시편 131:1-3절

  본 시는 다윗의 저작이고, 성전에 올라가면서 부른 노래로 분류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이 시를 성전에 올라가면서 부르게 되었는지 본문을 살피면서 생각해 보자.

  1절에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라고 했다.

  성경에 나타난 다윗은 온갖 역경을 겪으며 일생을 산 사람이다. 어린 시절에는 평범한 목동으로 살았지만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주의 신이 임한) 후에는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죽이는 일을 시작으로, 나라의 군대 장관으로, 왕의 사위로, 그 후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40년을 통치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기름 부음 받은 자의 삶은(장차 오실 메시아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역할을 담당했기에)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험난했다. 적장을 물리친 후 온 백성의 추앙을 받았으나 사울 왕의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되어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쫓겨 다녔고, 우여곡절 끝에 왕이 된 후에도 전 왕의 세력들의 견제를 받으며 어렵게 통치했고, 나라가 안정된 후에는 주변 나라들이 조공을 바칠 정도가 되어 백성들은 태평성대를 누렸으나 자식들이 아버지의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죽이는 뼈아픈 일도 경험했다.

  여하간 다윗은 영욕의 험난한 일생을 살았다. 그런 다윗이 어느 시점에 본 시를 썼는지 알 수 없지만 1)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2)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3)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라고 했다.

  교만은 잘난 체하며 뽐내고 건방진 태도를 가지는 것인데,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이 교만하지 않을 수 없지만, 특히 대중들로부터 추앙받고 높은 지위에 올라 권세를 누리게 된 다윗 같은 인물은 스스로를 잘난 존재로 여기기 쉽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교만하게 되고 남들을 얕잡아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높은 지위에서 좋고 귀한 것을 누리며 살았기에 당연히 눈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렵게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수많은 어려운 일을 경험한 다윗이 큰 일, 기이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삶을 살지 아니한다고 했으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이것은 주님으로부터 극심한 꾸중과 책망을 받으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제대로 알게 된 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 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그의 행위는 율법에 따르면 천번 만번 죽임을 당해도 마땅한 완악한 죄악이었다. 그러나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 그의 죄악을 지적하기 전에는 자신이 그렇게 완악한 자인 줄 깨닫지 못했다.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책망을 받게 된 다윗은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51:5).”라고. 이것은 자신의 존재 자체가 죄 덩어리라는 말이다.

  이런 깨달음 속에서는 절대 마음이 교만할 수 없고, 눈이 높을 수 없으며, 억지로 어떤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애쓰는 짓(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일)은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2절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시길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 고백 역시 주님으로부터 책망받고 자신의 실체를 알게 된 자의 상태를 묘사한 것이다.

  ‘젖 뗀 아이가 어미 품에 있음’은 진정한 평온이며 고요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외부의 어떤 환경도 깨지 못할 완벽한 평안이다.

  죄인은 죄에 합당한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그 허물이 사함을 얻고 그 죄가 가리움을 받은 자(시32:1)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본 시의 저자 다윗이다.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 용서받아 누리게 되는 은혜가 평안이요 고요다.

  3절에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라고 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자신만이 아닌 온 백성이 자신처럼 주님의 긍휼과 사랑을 알고 평안 속에서 주를 찬양하는 삶을 살기를 원했다.

  여호와를 바란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용서와 사랑을 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이며, 이 관계 안에서 주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성도는 평안을 얻게 된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6).”

  이사야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예수님의 십자가가 유일한 복음이고 그 외에는 복음이 아니다(다른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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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08.12 -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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