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0~134편(총 15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이스라엘 백성들이 절기나 그 외 특별한 때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부른 노래)’라고 되어 있는데, 시편을 분류하여 이런 표제를 붙이게 된 시기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한 후다.
본 시는 표제에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 다윗이 성전에 올라가면서 부를 목적으로 지은 것은 아니고, 후대 사람들이 다윗의 본 시를 성전에 올라가면서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시에서는 다윗의 마음과 백성들의 마음을 각각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1절에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고 했다.
이것은 다윗이 왕이 된 후에도 한참을 분열된 백성들 속에서 제대로 나라를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 있다가, 7년 6개월 후에 온 백성이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고 나라가 안정을 찾게 되었을 때(삼하5:5 참조), 다윗이 제일 먼저 한 일이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모시고 오는 일이었다. 이때 다윗뿐만 아니라 온 백성이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상황을 이해하면서 본 시를 읽으면 훨씬 더 선명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일인가? 이것은 왕의 입장에서도 그러하지만 백성들 또한 그 감격을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성전에 올라가면서 이런 노래를 부른 자들의 마음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하나님 앞에 나가 모든 것을 털어놓고 그분의 품에 안기는 어린아이의 심정을 생각해 보라.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는 주님의 약속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형제의 연합과 동거’를 신약적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형제’는 혈통적 관점은 아니고 주님의 피로 씻음 받은 자들을 ‘형제’라 한다(마12:49-50). 그리고 ‘연합과 동거’도 단순히 함께 있다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씻음 받은 자들이 ‘연합과 동거’(롬6:5)에 해당하는 자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이런 일이 있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3:16-17).”
이것은 세례(연합)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연합된 것처럼, 성도는 예수님과 연합된 자다. 이 연합은 예수님이 자기 백성의 죄를 위해 대속의 피를 흘릴 때만 이뤄지는 관계이다.
2절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이 구절을 생각해 보자.
형제가 연합한 아름다움을 아론이 제사장 직분을 받기 위해 기름이 온몸에 흘러내리는 것과 비교했다. 이는 성전 제사의 중요성을 새삼 확인케 하는 말씀이다.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다. 온 백성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죽음에서 살아났고, 그 의미를 평생을 간직하며 살아야 할 자들이다. 그러기에 출애굽 이후에 하나님은 성막을 짓게 하셨고, 제사장을 세웠고, 제물이 피를 흘려 죽음으로 자기 백성을 용납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형제 연합(1절)’과 ‘보배로운 기름이 아론의 온몸에 흘러내림(2절)’은 별개의 일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인 것이다. 예수님의 흘리신 보혈이 형제를 만들었고, 그 형제는 주님의 피로 연합된 자다.
3절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이 구절을 2절과 비교하면 좀 더 범위를 확대해서 형제 연합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보배로운 기름이 아론의 온몸에 흘러내림’이 아론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은혜라면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은, 이스라엘 전체에 내리는 은혜다. 의미를 새겨보면 전혀 차이가 없지만 표면적으로 보면 범위를 크게 확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헐몬은 이스라엘 북쪽 레바논 산맥의 돌출부를 이루는 해발 2,770m의 산으로 이스라엘 지역의 산보다는 훨씬 높은 산이다. 그러니까 헐몬산은 하늘과 제일 가까운 지점이고 그곳에서 시작된 이슬(은혜)이 아래로 흘러 시내산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형상은 아론이 머리에 기름이 부어져 수염으로 흘러내리고 옷깃을 타고 온몸을 적시는 것과 같다. 헐몬산에서 내린 이슬이 아래 시내산까지 이르게 되니 말이다.
그런데 3절의 핵심은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라는 말씀이다. 성전이 중요하기에 아론이 직분을 받는 장면(보배로운 기름이 아론의 온몸에 흘러내림)과 헐몬의 이슬이 시온산에 내림의 아름다움으로 묘사했다면, 이 모든 것은 여호와께서 영생을 약속하기 위함이란 것이다.
영생은 내가 죽지 않고 계속 사는 것이 초점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영원히 함께(연합하여 동거)하시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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