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원수와 나의 원수는 분명 다르다. 이것을 구분하지 않으면 성경을 읽으면서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다윗은 자기 개인의 원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를 향해 말하는 것인데, 성경을 읽는 독자가 그것을 자기 원수로 둔갑시키는 경향이 허다하다.
원수와 악인으로 인해 탄식하고 근심하는 다윗을 보면서 나 또한 나를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자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면서 그들을 처치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고, 마치 그것이 성도가 정당하게 하나님께 요청할 수 있는 기도인 것처럼 착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의 원수를 갚아주시는 분은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외면하고 그분의 뜻에 맞설 때 그를 향해 진노하시고 진멸하시는 분이다. 다윗이 본문에서 원수를 향해 “저희를 멸하소서”(9절), “사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임하여 산채로 음부에 내려갈지어다”(15절), “저희로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시리이다”(23절) 등의 표현은 다시 말하지만 결코 다윗 개인의 원수이기에 이런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는 자, 즉 여호와의 원수이기에 이런 기도를 드린 것이다.
다윗도 인간인지라 생명의 위협 앞에 두려워하고 불안에 떨었다. 그러나 스스로의 힘으로 이 위기를 탈출할 재주가 없음을 안다. 비록 답답한 심경에서 “내가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으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6절) 라고 말하지만, 그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모든 기대를 걸고 있다.
“저희가 주야로 성벽 위에 두루 다니니 성중에는 죄악과 잔해함이 있으며 악독이 그 중에 있고 압박과 궤사가 그 거리를 떠나지 않도다”(10절)는 말씀을 보면, 이들이 마치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어지럽히는 반사회적 인사로 여길 수 있겠으나 그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자기 언약을 따라 다윗을 왕으로 세우기를 원하시는데 어리석은 다수대중들은 현재의 왕 사울을 중심으로 뭉쳐 있고, 사울의 뜻에 따라 다윗을 제거하려 하니 거짓과 위선, 강포와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런 강포를 행하는 자들이 예초부터 다윗을 미워하고 싫어했던 자가 아니란 사실이다. 대부분은 다윗과 가까운 지인이며, 친구이며, 동료가 원수로 변해 다윗을 죽이려 하고 있다.
이것은 다윗이 처신을 잘못해서도 아니며, 자신이 너무 높은 신분으로 상승했기에 시기 때문에 발생한 일도 아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간의 투쟁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의 도구로 뽑혀 나왔기에 사단이 그 언약을 궤멸하려하므로 이런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사태는 비단 다윗 개인에게만 발생한 특수 상황이 아니다. 창세 이후 세상이 끝날 때까지 이것은 지속된다. 예수님 당시의 사도들도 세상으로부터 핍박과 죽임을 당했고 오늘날의 성도 역시 복음의 편에 서 있을 때는 세상으로부터 오는 시기, 질투, 미움, 괴롭힘, 모함을 피할 수 없다.
다윗의 탄식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발견해야 한다. 그분은 우리 무리의 죄악을 담당하기 위해서 채찍에 맞고 죽임 당하셨다. 그리고 성도는 그분의 자녀이기에 그분이 가신 길을 따라가도록 되어 있고, 그 길이 세상에서 복음 때문에 외면당하고, 쓰레기 취급받고, 조롱감이 되는 것이다.
“나를 대적하는 자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저가 내 생명을 구원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18절) 라는 고백은, 성도이면 누구나 나와야 할 고백이다. 끊임없는 환란이 밀어 닥치지만 그 환란 중에 주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기에 평안을 맛보며 감사가 나오게 하신다.
세상은 거짓 평안을 외치고 온갖 감언이설로 성도를 주님의 사랑에서 멀어지게 하려고 하지만 그 미끄러운 입과 부드러운 말 속에 날카로운 칼이 숨겨져 있음을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우리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12절)고 했다. 만약 우리의 힘과 지혜로 원수를 대적해서 이기려 한다면 이는 어리석은 짓이다. 그 원수는 나의 원수가 아니라 여호와의 원수이기에 여호와께 맡겨야 한다. 그리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주께 붙들린 성도는 요동함이 없다. 아니 주께서 요동치 않게 하신다.
원수의 파멸과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 승리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성도에게 그것들을 목도하는 그날까지 쉼 없이 이끄시고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심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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