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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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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서경수
Subject   시편 143:1-6절

  본 시는 다윗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임과 동시에 찬양이기도 하다. 기도와 찬양은 그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다윗의 시에서는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담겨 있다.

  1절은 대구법과 점층법이 함께 사용되고 있다. “기도를 들으시며”와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라는 표현은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대구법), 앞의 내용보다 뒤에서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점층법). ‘기도’보다는 ‘간구’가, ‘들으시며’보다는 ‘귀를 기울이시고’가 더 깊이 있는 수사다.

  “여호와여 내 기도(간구)를 들으시며(귀를 기울이시고)”라고 한 후에,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라고 했다.

  이 구절을 축약하면, ‘여호와여 내 기도에 응답하소서’ 이렇게 되겠지만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응답’보다 ‘주의 진실과 의’에 방점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열심히 그리고 간절히 기도해도 인간의 바람대로 이뤄주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뜻대로 응답하신다는 것을 시인은 잘 알고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런 내용으로 기도하셨다.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14:36).”

  시인이 1절에서 기도한 내용이 예수님의 기도와 같다고 하겠다.
  2절에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 마소서.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앞뒤 구절이 모순처럼 보인다. ‘심판을 행치 마소서.’라고 했으면, 뒤에 ‘나는 죄가 없습니다.’라는 말이 와야 자연스럽다. 그런데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라고 했으니 이게 어찌 합당한 말인가?

  인간 세상에서 통용되는 논리로는 이 구절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주의 목전에서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라고 했으면 ‘그러니 모든 인생을 심판하소서’라고 해야 옳은 것 아닌가?

  시인의 주장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 바로 이런 내용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23-24).”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할 자는 없다. 그러기에 주님의 용서가 아니면 도무지 살 수 없음을 알기에 시인은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 마소서’라고 부르짖고 있다.

  3절에서는 “원수가 내 영혼을 핍박하며 내 생명을 땅에 엎어서 나로 죽은지 오랜 자 같이 흑암한 곳에 거하게 하였나이다.”라고 했다. 이것은 성도가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일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사단은 성도를 방치하지 않는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성도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끊어놓으려고 발버둥 친다. 그러니 시인은 과장됨 없이 3절과 같은 표현을 하는 것이다.

  4절 [“그러므로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속에서 참담하니이다.”]은 3절의 결과를 묘사하고 있다.

  성도의 억울함, 답답함, 비참함 등등의 마음은 하나님의 언약에 사로잡혔기에 경험하게 되는 특수한 환경이다. 그러기에 마냥 원망하고 불평하며 신세타령하는 것과는 다르게 읽어야 한다.

  5-6절에서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묵상하며 주의 손의 행사를 생각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라는 고백은 3~4절을 바탕에 깔고 있다.

  주께 사로잡힌 자는 사단의 공세에 시달릴 수밖에 없고, 이 풍랑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무지 어찌할 수 없어서 주를 의지하며 그분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이 없다.

  정리해 보면, 시인은 주님의 소유로 부름을 받았기에 사단으로부터 끊임없는 공격을 받아 죽을 지경에 처해서 주님께 원수의 손에서 건져 달라고 간구하면서 응답해 달라고 호소하지만, 그 응답은 내가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주의 진실과 의’에 국한된 것임을 알고 있고, 주님 외에는 자신을 인도할 자가 없기에 오직 주님의 손길만 사모하고 있다.

  세상을 시작하신 분도 주님, 운행하시는 분도 주님, 결말을 지으시는 분도 주님이다(롬11:36). 그러니 주님을 사모하고 바라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시인이 이 사실을 깨달았기에 오직 주님을 향해 기도하며 감사하며 찬양하고 있다. ‘죽어도, 살아도 나는 주의 것이니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님의 뜻대로 이끌어 주옵소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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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12.23 -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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