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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편 :::


219 222 통계카운터 보기   관리자 접속 --+
Name   서경수
Subject   시편 139:7-12절

  1~6절은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다면, 본문은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나와 늘 동행하심에 대해서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있다.

  7절에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라고 했다. 이 말은, 주님을 떠날 방법도 피할 재주도 없다는 말이다.

  이 구절만 보면 주님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답답하고 질식할 것 같은 상황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뒤에 연결되는 말씀을 보면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주님의 품을 벗어날 수 없어서 답답한 것이 아니라 이보다 더 행복하고 평안할 수 없다는 것이다.

  8절은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라고 했다. 이 역시 하나님은 아니 계신 곳이 없어서 주님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9~10절에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라고 했다.

  이상의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을 피할 방법도 주님의 손에서 벗어날 재주도 없음이 분명한데, 이것을 부정적 측면에서 서술하는 것이 아닌 감사와 기쁨의 심정을 토해내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주님의 손이 나를 붙드시고 인도하시니 이보다 더 아늑하고 평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님의 일하심을 보면서 정반대로 해석하고 이해하게 됨은 무슨 이유일까?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은 자신이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기에 자기 위주로 모든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 하나님의 일하심을 놓고도 불평하고 원망하고 짜증을 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주의 신이 임한 자들은 주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바탕으로 모든 것들을 보기에 주님의 일하심은 즐겁게 찬송할 것밖에 없는 것으로 읽히고 보인다.

  사도 바울은 언약의 관점에서 세상 만물을 바라보기에 이렇게 외치고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으니, 부르심을 입은 자가 아닌 경우에는 ‘합력하여 선을 이룸’과는 무관하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 구절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니라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만 해당된다는 점이다.

  고린도후서 1장 10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고후1:10).”

  이 구절도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보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예’만 되지 ‘아니오’라고 할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감사함으로 받지 않는다. ‘예’하고 반기는 것도 있고, ‘아니오’하고 거절하는 것도 있다. 이렇게 선별해서 수용하거나 거절하는 자세는 그리스도의 관점이 아닌 나의 관점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11~12절에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라고 했다.

  이 구절에서는 가정법을 사용하면서까지 주님의 무한한 능력을 찬양하고 있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지만) 혹시 흑암이 나를 덮는다 해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한다’고 했다.

  흑암이 나를 덮는다 해도 하나님은 그 흑암을 빛으로 바꾸시니 주님께 나를 숨길 수는 없고, 주님과 나를 떼어놓을 권세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다.

  이것을 바울식 표현으로 하면 이렇게 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5-39).”

  시인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를 깊이 생각해 보자. 아니 계신 곳이 없이 어디에나 계시는 분이 나와 동행하시면 ‘나의 매사에 간섭하셔서 나에게는 자유가 없어 답답하다.’고 느껴지는지, 아니면 ‘나는 주님의 것으로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구나.’ 하면서 주님을 향한 감사와 찬송이 터져 나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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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11.04 -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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