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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서경수
Subject   시편 144:8-15절

  8절에 “저희(이방인) 입은 궤사를 말하며 그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니이다.”라고 했다. 이 구절을 쉽게 풀이하면, 이방인(언약을 알지 못하는 자)이 하는 말은 다 속이는 말이고, 그들의 행위는 전부 거짓이라는 말이다. 과연 이런 하나님의 규정을 사람들이 수용할까?

  불신자라고 해서 그들 모두가 입만 열면 거짓말하고, 그들의 행동이 다 비뚤어진 것이라고 한다면 너무 편협된 사고방식 아닌가? 여기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생각이 다르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인지 따져보아야 한다.

  사람들은 옳고 그름을 윤리나 도덕을 바탕에 두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신다. 그러니 언약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다 주님의 분노로 멸망할 자들이다.

  사람들 기준으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순수하고 다정하고 희생적이며 남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착하고 선한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주님의 기준에서 언약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진노와 심판의 대상일 뿐이다.

  간단히 말하면, 죄 없으신 예수님의 피만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는 유일한 방편이다. 그러니 주님의 피로 씻음 받은 자 아니면 그들은 다 심판을 받는다.

  9절[“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열 줄 비파로 주를 찬양하리이다.”]은 앞뒤 구절을 보면서 해석하면 자연스럽게 풀린다. 시인이 하나님께 기쁨으로 찬양하는데, 그 이유가 앞 절(8절)에서는 ‘이방인은 온통 거짓된 말과 행동을 하는 자’이기에 심판이 합당하고, 뒷 절(10절)은 “다윗을 그 해하는 칼에서 구하시는 자”이기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있다.

  시인이 하나님께 찬양하는 이유는 자신을 지키시고 잘 보살펴주시는 좋은 분이어서가 아니라 언약대로 악인은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은 구원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바를 하나님이 이뤄주셔서 감사한다면 이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언약하신 바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성도의 온전한 찬양이라 할 수 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후 찬양하는 대목을 보면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출15:1).”라고 했다. 미리암의 찬송내용도 동일하다.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출15:21).”라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대목을 ‘원수(이스라엘 백성의 원수, 애굽의 군대)를 멸하신 하나님’이 고맙고 감사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찬송하는 것으로 본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아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그 뜻을 알지 못한 애굽의 군사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하려 했고,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애굽의 군사들을 홍해에 수장시켰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대로 이루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 것이다.

  12~14절은 인간들이 바라고 원하는 일들이 가득 담겨 있다. ‘자녀들이 훌륭하게 성장하고, 곡간에 곡식이 가득하고, 가축들이 번성하고, 대적이 물러가고, 거리에는 슬피 우는 자가 없는 동네’ 참으로 환상적인 세계 아닌가?

  그러나 이 구절에서 표현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자의 모습이 이러하다는 것이다. 주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고(롬8:1), 주님께 붙어 있는 자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것(요15:5)이라는 말이다.

  주 안에서는 먹을 양식이 없어서 굶주리는 것이 아니고, 마실 물이 없어서 갈증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8:11).”고 했다.

  이것을 거꾸로 이야기하면 먹을 양식이 풍부해서, 그리고 마실 물이 넉넉해서 만족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 이뤄짐을 보면서 평안과 풍족함을 느끼는 것이 성도라는 말이다.

  15절에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라고 했다.

  ‘이러한 백성’은 12~14절의 내용으로 채워진 자들이다. 즉 주님의 언약 안에서 부족함을 모르고 살아가는 성도들이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 세상 그 무엇도 주님이 자기 백성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방해할 수 없다.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성도)이 복이 있다.’고 하셨다.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49:14).” 이것이 주님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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