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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편 :::


169 117 통계카운터 보기   관리자 접속 --+
Name   서경수
Subject   시편 119:33-40절

  본문은 히브리어 알파벳 다섯 번째인 헤(ה)로 시작되며, 각 절에 사역동사가 들어감으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주께서 하게 하실 때만 가능하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33절에는 “여호와여 주의 율례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주의 율례의 도’를 스스로 지킬 능력이 없고 오직 여호와께서 그 도를 가르쳐주실 때만 깨닫고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이것이 언약적 관점이다.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언약적 관점을 가질 수 없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악적 관점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33절의 경우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라는 것에 강조점을 두고 ‘나의 의지와 노력’을 촉구하는 식으로 읽는다.

  하지만 인간이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재간이 없다.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51:6).”

  34절 “나로 깨닫게 하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라는 말씀도 마찬가지다. 주님께서 ‘깨닫게 하셔야만’ 알 수 있고, 주의 법을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작정 온 힘을 다해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달려들면 결과는 실패로 끝난다. 구약 이스라엘 역사가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주의 영이 임했기에 이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그러기에 계속해서 주께서 하게 하셔야만 가능하다는 점을 고백하고 있다.

  35절에는 “나로 주의 계명의 첩경으로 행케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라고 했다. 이 구절도 ‘행케 하소서’가 중요하지 ‘내가 즐거워함’이 초점이 되면 엉뚱한 해석이 나온다.

  여기에서 ‘첩경’은 빠른 길이 따로 있다는 의미는 아니고, 그냥 ‘길’로 보면 된다. 즉 주의 계명이 있는 길로 ‘갈 수 있게 해달라’는 간구인데, 자신은 결코 그 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만약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또 그 뜻대로 행할 수 있다면 ‘행케 하소서’라는 기도는 적합지 않다. 도저히 할 수 없기에 이런 기도를 한 것이다.

  36절 “내 마음을 주의 증거로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치 말게 하소서.” 역시 하나님의 강권하심을 소망하며 구하는 기도다. 인간은 그 마음이 탐욕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창세기에서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8:21)”라 하셨고, 요한 1서에서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2:16).”고 하셨다.
  우리의 마음이 탐욕으로 향하지 않고 주의 증거(말씀)로 향하게 되는 것도 사람이 원한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다.

  37절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도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라는 말씀도 우리는 허탄한 것을 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인정하면서, 주께서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셔야 주의 도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나의 영은 소성케 된다는 것이다.

  38절에는 “주를 경외케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라고 했다. 여기서도 ‘세우소서’가 핵심인데, 주의 말씀으로 세워질 때 주를 경외할 수 있다는 점을 시인은 분명히 알고 있다.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니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나 여호와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섬기고 싶어도 섬길 재주가 없는데 어떻게 하랴!

  이런 무능한 존재임을 알게 된 시인은 언약에 입각해서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다. 주의 말씀으로 세워달라고. 그럴 때만 주님을 경외할 수 있기 때문이다.

  39절 “나의 두려워하는 훼방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주의 규례는 선하심이니이다.” 여기서는 ‘떠나게 하소서’가 중요하다. 주의 말씀, 교훈을 훼방하는 것은 사단의 일이다. 사단은 예수님께도 찾아와 훼방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4:3).”

  이처럼 마귀는 인간을 시험하고, 복음을 훼방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다. -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벧전5:8-9).”

  40절에 “내가 주의 법도를 사모하였사오니 주의 의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라고 했다. 여기서도 ‘소성케 하소서’가 주된 내용이다. 잘못 읽으면 ‘내가 주의 법도를 사모하였사오니’가 주축인 것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결코 아니다.

  ‘주께서 당신의 말씀으로 나를 소성케 하실 때 나는 주의 법을 사모하게 됩니다.’라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주의 법을 사모하는 것은 주님이 말씀으로 나를 일으켜 세울 때나 가능한 일이다.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은 주님의 말씀 앞에 죄인이며 무능자로 드러날 뿐이다. 그 누구도 자신의 판단과 열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그 말씀에 순종하며 주를 경외할 재주가 없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기에(사53:5)’ 우리는 채찍 맞으신 분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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