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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세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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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서경수
Subject   호세아 12:1-6절
  1절에서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간다.’고 했고, 또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애굽에 기름을 보낸다.’고 했는데, 이 구절들이 의미하는 바는 ‘헛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인데, 더 정확히 말하면 ‘거짓과 포학을 더하는 일’을 일삼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이웃나라 애굽에 기름을 보내고, 또 앗수르와 계약을 맺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국가간에 서로 주고받는 것 없이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내게 없는 것은 이웃에게서 취해 와야 하고, 또 이웃이 필요로 하는 것은 제공해 주는 것이 이 세상 사는 요령 아닌가?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웃나라와 계약을 맺고 무역하는 일을 ‘거짓과 포학’으로 규정하시는가?

  이것은 무역하지 말라는 말도 아니고, 계약을 맺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할 이스라엘이 세상을 부러워하고 그들에게 동화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이다.

  이스라엘은 어린양의 피 공로로 사는 자들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 주님의 희생적 사랑에 감사하고 그 은혜를 찬양하는 것이 그들의 존재 목적이다. 하지만 그들은 세상 나라의 물질적 풍요가 부러웠고 그것을 얻기 위해 세속화되고 말았다.

  2절에는 “여호와께서 유다와 쟁변하시고 야곱의 소행대로 벌주시며 그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고 하시면서, 3절에서 ‘야곱은 태에서 그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루었다’고 하신다.

  3절은 인간의 죄악 된 본성을 너무도 정확히 일러주시는 말씀이다. 출생 때부터 경쟁에서 이기려는 마음이 장년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고 심지어 하나님에게도 이기려는 것이 죄인들의 심성이란 것이다.

  인간이 싸움에서 이기려는 것은 선악과를 따먹은 후유증이다. 스스로 신이 되려는 마음이 있기에 항상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반드시 싸워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을 향해 하나님은 쟁변하시고, 그들의 소행대로 벌을 주시겠다고 하신다. 하나님과 쟁변해서 정당함을 인정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행위대로 보응하시면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

  4절에는 흥미로운 표현이 있다. ‘하나님은 벧엘에서 저를 만나셨고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형을 피해 도망자의 신세가 된 야곱을 하나님은 벧엘에서 만나주셨고, 또 약속을 주셨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28:15)”고.

  ‘벧엘의 하나님’은 약속을 주셨고,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는 분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그분의 약속만 믿으면 되는데 뭘 염려하고 걱정하는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기에 스스로 뭔가를 이루려 했으니 그것이 ‘거짓과 포학을 더하는 일’이다.

  5절에서 “저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여호와는 그의 기념 칭호니라.”고 했다. 이 말씀은 ‘많은 군사를 이끌고 전쟁에 직접 나서시는 분’이며, 그 이름이 ‘여호와’ 즉 스스로 계신 분이란 뜻이다.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이 혼자 모든 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하시는 분, 약속하신 바는 반드시 이뤄내시는 분, 그 이름은 여호와시다.

  6절에서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공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라볼지니라.”고 한다.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 그는 스스로 전쟁에 나가 승리를 쟁취하는 분이다. 그리고 자신이 약속하신 바를 기필코 성취하시는 분이다.

  ‘인애와 공의를 지키는 것’은 인간이 어떤 행위를 하라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다. 인애는 사랑이고 공의는 행위에 대한 정당한 평가(심판)인데,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건지기 위해 스스로 심판의 자리에 나가셨다. 이것이 바로 인애(사랑)이며 또한 공의다.

  출생하는 순간부터 싸워 이기겠다고 설치는 인생들, 그 마음은 하나님마저 굴복시키려는 것으로 표출된다. 과연 이 완악함을 무슨 수로 바꿀 수 있겠는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라볼지니라(6절).”고 하셨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완악함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인가? 그건 아니다. 내 스스로 나의 죄악과 완악함을 어찌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내가 아닌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라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다. 즉 우리의 허물을 인하여 찔렸고,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상한 몸이 되셨다. 그래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입게 된 것이다(사5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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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7.27 - 13:23
LAST UPDATE: 2019.07.27 -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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