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 날에 불안과 근심으로 잠 못 이루며 주께 부르짖는 시인의 마음속에 이와 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 인자하심이 길이 다하였는가? 그 허락을 영구히 폐하셨는가? 하나님이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 긍휼을 막으셨는가?”(7-9절)라는.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늘 스스로 상상에 빠진다. 나의 불편과 고통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기도가 시작되고, 그런 기도 같지도 않은 기도를 하면서도 속마음은 하루속히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하는 간절함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그런 간곡한 부르짖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환경이 바뀌지 않고, 변화의 조짐마저 없을 때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온갖 상상을 하면서 답답해한다.
어느 누가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흡족한 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 우리가 기도하는 내용 전부는 내 욕망의 그물을 벗어날 수가 없다. 아무리 주의 뜻을 말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한다 할지라도 결국은 나의 아픔을 호소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염려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고, 어리석은 양 같이 갈 바를 알지 못해 각기 제 갈 길로 가지만 선한 목자께서 우리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자기 언약대로만 일하신다. 인간 개개인의 형편과 사정을 고려해서 일하시는 분이 아니다. 이런 사실을 놓친다면 성도는 기도하면서 답답하여 견딜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할 것이다. 본인은 선한 일이라고 여기고 기도를 하지만 언약과 무관한 것이라면 하나님은 외면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절실하고 간절하게 기도해도 그 기도는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옛날 곧 이전 해를 생각하였사오며”(5절)라는 구절과 “곧 여호와의 옛적 기사를 기억하여 그 행하신 일을 진술하리이다”(11절)는 구절을 보면 결국 시인은 하나님의 언약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언약을 생각할 수만 있다면 이는 이미 응답을 받은 것이요, 기쁨과 찬송의 마음으로 변하게 된다. 내가 어렵고 고통스런 환경에서 벗어나 기쁘다는 말이 아니다. 내 불편한 환경이 그대로 지속되어도 상관없고, 깊은 수렁이나 험준한 길에 놓여 있어도 문제될 것이 없다. 이런 모든 과정들은 결국 주님의 언약 성취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왜 애굽에서 430년이란 긴 세월을 종살이 하며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했는가? 출애굽 과정에서 왜 수많은 난관을 만나야 했는가? 왜 40년이란 긴 시간을 아무것도 없는 빈 광야에서 지내야 했는가? 이런 세월들은 괴로움과 고통의 나날임이 틀림없다.
괴로움의 세월을 보내면서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울부짖고 호소했겠는가. 그 아픔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셨다. 이런 과정을 지나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것이며, 당신이 약속하신 내용대로 모든 것을 성취하는 일이기에 사람들의 요구와 무관하게 자기 뜻대로 밀고 나가셨다.
어느 날 밤 애굽의 모든 장자가 죽어야 했던 이유를 아는가? 출렁이는 홍해바다에 길을 내신 이유를 아는가? 그 길이 갑자기 다시 사라져버린 이유를 아는가? 반석에서 물이 솟아난 이유를 아는가? 하늘에서 맛나가 내린 이유를 아는가? 난공불락의 성 여리고가 무너진 이유를 아는가?
이런 물음은 언약이라는 구조를 벗어나서는 그 어떤 해답도 찾을 수 없다. 이 땅의 모든 일들이 다 이와 같다. 우리 개인이 겪고 만나는 모든 일상도 다르지 않다. 모든 것은 주관자 되시는 분이 자기 언약에 따라 일하시는 결과로 움직여질 뿐이다.
‘주의 도’(13절), ‘주의 능력’(14절)은 무엇을 두고 하신 말씀인가? “주의 팔로 주의 민족 곧 야곱과 요셉의 자손을 구속”(15절)하시는 것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언약대로 자기 백성을 건지는 것이 주님의 뜻이고, 그 일을 행함에 있어 모든 것을 동원하는 것이 그분의 능력이다.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약속하신 것은 자기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 택한 백성을 위해 속죄의 제물이 되게 하시고, 그 사건을 통해 자기 사랑을 만백성에게 나타내 보이시고, 그 십자가의 사랑을 영원히 찬송하게 하기 위함이다.
시편 기자는 기도하면서 답답하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결국 주님의 언약을 기억하며 감사와 찬송을 드렸다. 그리고 언약대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그 권능을 보았다. 성도는 결국 모든 것을 통해 십자가의 사랑과 은총으로 감사, 찬양하게 된다. 스스로 자기 길을 찾아 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인도를 받으며 평안과 안식을 맛본다. “주의 백성을 무리양 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나이다”(20절) 라는 고백이 나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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