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자신을 대하는 두 세력이 서로 상반된 모습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에 굉장히 낯설어 하고 있다. 한 세력은 이유도 원인도 알 수 없이 자신을 죽이려고 끊임없이 달려들고, 또 다른 세력은 허물과 죄로 얼룩진 자신을 긍휼과 사랑으로 영접하시는 것 때문에.
이 대립되는 두 세력 사이에 놓인 다윗은, 인자와 긍휼로 자신을 영접하시는 분이 있음을 알기에 사악한 무리들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고 도망 다니는 상황에서도 평안과 기쁨, 그리고 감사의 마음이 가시지를 않는다.
‘일어나 치려는 자(1절), 사악을 행하는 자,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2절), 생명을 해하려고 엎드려 기다리는 자(3절)’들이 다윗을 에워싸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과연 불평과 원망대신 감사와 찬송이 나올 수 있을까?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다윗은 분명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17절) 라고 고백하고 있다.
우리는 본 시편을 보면서 다윗이 찬송하는 진짜 이유를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그와 같이 정말 기쁜 마음으로 찬송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억지로 되는 일이 아니다. 모든 것을 바로 깨닫고 볼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하고, 그 지혜에 따라 진실한 주님의 사랑이 느껴져야만 찬송이 가능하다.
단순히 생각하면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다윗은 적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보호와 보살핌으로 털끝하나 상하지 않았고, 결국은 적들을 물리치고 승리했다. 그러니 최후 승리자의 입장에서 적들을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승리를 안겨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것이라고.
그러나 이런 해석은 전혀 본문을 이해하지 못한데서 생긴다. 죽이려 하는 원수 앞에서 죽지 않아서, 또는 나를 해하려는 악한 세력들이 결국은 자신이 그런 형편으로 떨어지게 되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유 없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 죽임에 넘기우는 상황과 정반대로 이유 없이 용납하시고 인자를 베푸시는 그분의 은총을 보았기에 감사가 나오는 것이다.
성도가 주께 감사하고 찬송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나의 행위를 근거로 탓하시고 칭찬하심이 아니라, 주님 자신의 희생과 사랑에 연유해서 모든 것을 용서하시고 자기 백성 삼으신 그 은총과 인자가 영원히 찬양 할 이유이다.
다윗뿐만 아니라 모든 인생들은 두 세력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간다.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간의 전쟁터가 세상이고, 이 세상에 놓여 있는 인생들은 어느 한 편에 속해 상대편과 싸우며 살아가도록 되어 있다는 말이다. 싸움 없이 평화롭게 지내고 싶은 사람도 어쩔 수 없이 자기와 다른 편에 선 자와 끝없는 전투를 치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바로 주께서 마련한 세상이다.
만약 세상을 이런 구도로 파악하지 않는다면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다윗의 경우를 놓고 보더라도, 나라에는 충성스런 신하이고 백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나라는 지키기 위해 자기 몸을 내 던지는 너무도 헌신적인 사람인데 왕도 백성들도 모두가 힘을 합해 다윗을 죽이려 했다.
이것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나를 해하려 하고, 나에게 피해를 주는 자라면 제거하려 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어느 모로 봐도 남들에게 해를 끼치는 자가 아니라 유익을 주는 자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그를 세상이 죽이려 했다. 적반하장이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일 아닌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났다. 이것은 인간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내가 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권세에 우리가 놓여 있다는 말이다. 사랑도 권세요, 미움도 권세다. 내가 사랑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사랑할 수도 없고, 내가 미워하려 해도 그것도 마음대로 안 된다.
감사와 기쁨과 찬송도 마찬가지다. 세상적인 안목으로 보면 감사의 조건들이 있어야 감사할 수 있다. 그러나 성도의 감사는 이 땅에서 조건을 찾을 수 없다. 물론 영적 안목에서 보면 이유가 있겠지만 세상 시각으로는 그 원인을 찾을 수가 없다.
따라서 감사와 기쁨을 이 땅의 그 무엇에서 찾으려 하지 말라. 만약 땅의 것 때문에 감사한다면 그 감사는 잠시 후 사라져 버릴 것이다. 다윗이 찬송하고 감사하는 이유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주님의 강권하심과 그분의 희생은 이 땅에서 보이는 것이 아니며 잡히지도 않는다. 다만 믿음으로만 깨달아지는 것이기에 그 믿음을 주시는 분이 있는 한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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