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강간 이런 엄청난 죄악을 범한 자가 용서해 달라고 애원하고, 자기의 죄악을 깨끗이 또는 말갛게 씻어달라는 말이 가히 뻔뻔스럽게 여기지지 않는가?
흔히들 회개에 대해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말하는 버릇이 있다. ‘우리는 죄인이기에 죄를 범할 수밖에 없고, 죄를 범했으니 하나님께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다윗도 큰 죄를 범했지만 회개하지 않았는가? 우리도 다윗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의 죄를 자복하며 회개하면 용서 받는다.’ 이런 식으로.
그러나 본 시편을 보면 이런 우리의 생각은 너무도 피상적인 생각이란 점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죄를 범해서 그 죄를 뉘우치고 다시는 그런 죄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회개가 아니라는 점이다.
만약 회개가 다시는 죄를 범치 않겠다는 결심과 연관이 있다면 본 시편은 전혀 이해될 수 없는 말씀이다. 다윗은 밧세바 사건을 두고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적에 악을 행하였다’(4절)고 했는데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죄라는 것은 우리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는다. 즉 내가 어떤 일을 했기에 죄가 되고, 또 어떤 일을 했기에 의가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범했기에 죄를 지었고, 아니면 주님께 순종했기에 의를 행했다는 식의 인식이 정당하지 않다는 말이다.
사실 인간은 의를 행할 수 없는 죄인이다. 바꿔 말하면 인간은 무슨 짓을 해도 죄뿐이다. 밧세바를 범하고 범치 않고를 떠나 우리는 태생적으로 죄밖에 지을 수 없는 자란 말이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5절) 라는 이 사실을 깨달아야만 진정한 회개가 성립될 수 있고, 다윗이 ‘주께만 범죄하였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다.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다’(3절)는 표현은,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죄를 범할 수밖에 없고 허물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영원히 죄의 굴레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우리이기에 우리의 힘이 아닌 주님의 능력이 개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윗은 주의 영이 임했기에 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주께 부르짖고 있다.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1절) 라고.
주께서 개입하지 아니하면 이 문제는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이다. 죄밖에 짓을 수 없는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어떻게 이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이것은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건질 수 있는 능력이 계신 분이다.
8절 말씀에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해답이다. 즉 인간이 꺾는 뼈(짐승을 죽여 드리는 제사)는 죄를 사할 수 없다. 그 행위 자체가 또 자기 욕망을 표출하는 죄악의 일종일 뿐이기 때문에.
그래서 인간이 꺾는 뼈가 아닌 주께서 꺾으신 뼈(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죽이는 일)로만 인간의 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다윗은 십자가의 영을 받아 이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이 사실을 믿기에 과감하게 자신의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사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감사와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다.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16-17절)라는 말씀 역시 같은 이야기다. 인간의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 아니 그것을 기뻐하실 수 없는 것이다. 역시 죄악의 일종이기에. 대신 그 아들의 희생만 받으시고 기뻐하신다.
여기에서 그 피를 믿는 성도는 자신이 죽을 죄인이란 사실을 알고, 그 자리에 예수님이 대신 들어가셨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상한 심령이 되는 것이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17절)라는 말씀이 바로 여기에 근거한다.
끝으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11절) 라는 간구를 생각해 보자. 사실 성도라면 누구나 십자가의 피 외에는 사죄의 길이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런데 이 믿음은 성신이 임할 때만 믿어진다. 따라서 성도는 이 십자가 용서를 날마다 믿게 하시고 적용시키시는 성신의 능력을 기대하고 의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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