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시에서 다윗이 기도하는 내용을 유심히 살펴보면 ‘부끄러움을 당치 않게 해 달라’는 것이 핵심으로 떠오른다. 1절에서도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라는 표현을 했고, 17절에서도 “나로 부끄럽게 마시고”라고 거듭 부르짖고 있다.
그렇다면 다윗이 느끼는 수치, 즉 부끄러움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거듭 부끄럽지 않게 되기를 간구하는 것일까?
상대와의 싸움에서 패하는 것이 부끄러운가? 타인보다 지략이 모자란다는 사실이 부끄러운가? 적과의 싸움에서 패하는 것을 심히 부끄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질병으로 인해 일찍 목숨을 잃는 것이 대적 앞에 부끄러움인 듯도 하고, 세상에서 승승장구하는 대적과 비교해서 자신은 너무도 초라하게 살아가는 것이 부끄러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다윗의 부끄러움은 아니었다.
11절에 보면 “내가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라고 했는데, 그가 정말 부끄럽게 여긴 것은 세상 사람들의 무시나 외면, 혹은 비난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그런 것이 아니다.
그가 세상으로부터 버림당함을 경험하면서 아픔과 고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정말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그가 두려워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만약 나를 외면하신다면 어찌할 것인가?’ 하는 착념에 빠져있다.
다른 부끄러움은 다 참고 견딜 수 있다. 하나 정말 다윗의 입장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부끄러움은 하나님으로부터의 버림받음이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 쫓아내고 별짓을 다한다 할지라도 마지막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주께서 ‘나는 너를 모른다(마7:23)’고 외면해 버리는 상황이 온다면 이보다 더 부끄럽고 낭패스런 장면은 없을 것이다. 다윗의 “나를 부끄럽게 마시고”라는 기도가 바로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에게는 무엇이 부끄러움인가? 남과 비교해서 물질이 부족한 것인가? 아니면 내 자녀가 세상에서 출세하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아내의 외모가 자랑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해서 부끄러운가? 그것도 아니며 내 지식과 경륜이 남들 앞에 내놓을 만한 것이 없어서 부끄러운가? 내 교회가 다른 교회와 비교해서 여러 측면에서 부족해서 부끄러운가?
원수가 자신을 집어삼키려고 비밀히 그물을 친 상황에서 다윗은 “근심으로 눈과 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9절)”라고 한다.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었기에 탄식하지만 궁극적으로 다윗이 소망하는 것은 이런 괴로움과 고통을 해소해 달라는 기도가 아닌, 주님으로부터의 잊혀짐과 외면당함을 걱정하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안 계신다면 다윗같은 세상살이는 지극히 어리석은 삶이다. 세상으로부터 따돌림당하고, 무시 받는 생을 살 필요가 없다. 어떻게 하든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야 하고, 그들과 뜻을 같이하면서 적당히 내 자리를 마련하고 평안하게 살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분명 살아 계시고, 그분의 의도하시는 바가 있고, 그분의 인도하심이 있기에 그분을 무시하고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믿음 좋은 다윗이라도 자신의 고통을 즐거워할 리 없다. 또 형제와 이웃으로부터 미움받고 외면당하는 것이 행복일 리 없다. 까닭 없이 대적이 발생하고 그들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상황을 반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 적당히 타협하고 그들이 원하는 길로 동행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왜? 그는 말씀의 능력에 붙잡혀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끌려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바로 성도가 어떤 자인가 하는 점이 밝혀진다.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을 향유하는 자가 아니라 주님의 지시에 따라 세상과 부닥치고 그 과정에서 신음하면서 세상은 심판의 대상이란 사실을 끊임없이 증거하는 자이다.
여호와께 붙잡혀 살아가는 자들은 누구나 다윗같은 삶을 산다. 그분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배척당하고 너무도 많은 어려움과 아픔을 겪게 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 아픔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생각보다 더 큰 생각에 사로잡힌다. 주님의 약속 성취에 대한 기대, 즉 주의 이름을 위하여 원수를 멸하고 자기 백성을 원수의 손에서 건져주실 것을 소망한다.
“부끄럽게 마시고”라는 부르짖음은 주님 이름을 위하여 약속하신 대로 원수의 손에서 구출해 주실 것을 믿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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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UPDATE: 2024.04.29 - 06: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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