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시를 보면 그 언어들이 풍성하고 아름다운 것이 사실이지만, 그가 찬란한 시어들을 동원해서 자신의 시적 감흥을 마음껏 발휘한 것이라기보다 주님의 향한 용솟음치는 간절한 마음을 쏟아냈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1절)”라는 고백 속에는 세상 그 어디를 둘러보아도 암흑천지이며, 이런 깜깜함 속에서 여호와 외에는 그 어떤 것도 희망이 될 수 없고, 그분의 능력이 아니면 이 어둠 속에서 건져질 자가 없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다.
어둠 속에서는 옳고 그름의 분별이 있을 수 없고, 참과 거짓의 차이를 볼 수 없으며, 생명과 죽음조차 뒤섞인 혼란 그 자체이다. 이런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 여호와께서 빛을 비춰주셨고, 원수의 손아귀에서 나를 건져 주셨다.
그렇게 되니 그 어떤 존재나 환경도 무섭거나 두렵지 않다고 했다. 두려움과 무서움이 왜 생기는가? 그것은 내가 가는 길의 끝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또 언제 어디서 나의 대적이 출몰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늘 초조하고 불안하다.
그런데 시인은 이런 암담한 처지에서 빛 되신 여호와를 만났고, 그분의 능력이 대적들을 진멸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그래서 더 이상은 원수들 때문에 불안에 떨고 염려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나의 대적, 나의 원수 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2절)”라는 표현 속에서 그런 상황을 읽을 수 있다.
이처럼 나 스스로의 힘으로 대항할 수 없는 적들을 주께서 친히 상대해 주시고, 나를 안연히 보살피시는 그 따뜻한 사랑을 맛볼 때 여호와께 대한 믿음을 고백한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3절)”라고.
이런 여호와의 따뜻한 보살핌과 인도를 받은 자는 세상 환경으로 인한 공포와 불안은 없다. 그래서 좋은 환경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대신 주님의 긍휼과 사랑 가운데 영원히 거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4절)”고.
과연 성도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무엇인가? 대적과 맞서 승리할 수 있는 힘인가, 아니면 고통과 어려움을 굳건히 참고 견딜 수 있는 인내력인가, 아니면 대적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지혜인가, 그것이 아니면 불평할 환경 대신 감사할 환경으로 바뀌는 것인가?
다윗은 그런 것이 그의 기도는 아니었다. 그 대신 “여호와께서 환란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5절)”라는 간구였다.
여기에서 초막이나 장막이 어떻게 안전한 피난처가 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은 성전에 숨으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용서하심과 용납하심을 가장 안전한 피난처로 생각하는 믿음을 표현한 것이다. 달리 말하면 나를 죽이려는 대적보다 더 두려운 원수는 내 영혼을 영원히 지옥으로 보내려는 사단인데, 이런 원수들에게서 여호와께서 마련하신 성전은 그들이 손댈 수 없는 피난처가 되기 때문이다. 정결한 짐승의 피로 말미암는 죄 용서, 그 피가 온 성전에 뿌려짐으로 정결함을 얻게 되는 그 놀라운 은총, 이것을 시인은 감사하고 있다.
성도에게 이보다 더 큰 기대와 소망은 없다. 원수가 아무리 강해도, 환란이 아무리 거세도 여호와를 피난처로 삼는 자는 평안을 누리기 때문이다. 여호와를 안식처로 삼는 자는 원수들이 에워싸 위협을 가해도 즐거운 마음으로 주께 제사하고 찬송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9절)”라는 외침이다. 다윗이 이렇게 여호와를 갈망하는 이유가 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었고, 누구보다 많은 재물을 소유했고, 여러 자녀를 둔 가장이었지만 그런 세상적인 환경이 결코 그에게 도움이 되지 못함을 뼈저리게 느꼈기에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그분께 소망을 둔다.
세상에 있는 것들은 자신에게 힘이 될만한 것이 없음을 알았다. 심지어 부모도 나를 버리고 떠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는 분이기에 그분을 기대하고 바랄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지 아니한가?
다윗의 기도 가운데 이런 내용도 있다. “여호와여 주의 길로 나를 가르치시고(11절)”라는. 이것은 인간의 지혜와 경험으로 살아가는 삶이 무가치한 것이며 허망한 것임을 아는 자만이 요청할 수 있는 기도이다. 주께서 제시하신 길만이 참 생명의 길이며, 그분의 가르침만이 참된 진리이다. 여기에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법이 있고, 영원한 안식이 있다.
어둠과 빛, 심판과 구원, 버림과 영접 이 두 갈림길에서 주님을 만난 자만이 감사와 감격의 찬양을 드릴 수 있다. 반대로 주를 만나지 못한 자들을 눈물과 슬픔, 고통과 비명, 원망과 불평만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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