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의 손에서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는 외침을 듣는다. 무척 긴박한 상황인 것 같고, 자신의 힘으로는 많은 대적을 대항할 능력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죽음의 위기에 봉착한 한 생명이 살려달라고 발버둥치는 절박함이 묻어나는 장면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주님의 긍휼로 인한 사죄가 거론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주의 진리, 교훈, 도(道)를 가르쳐달라고 호소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시는 자기 목숨을 지켜달라는 기도인가, 아니면 그 영혼을 죄에서 구원해 달라는 간구인가?
쉽게 생각하면 다윗을 대적하는 원수들이 다윗의 생명을 노리고 죽이려 하는 상황에서 그가 주님께 보살펴 주실 것을 간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결국 육신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문제요 참 생명의 문제가 다뤄지고 있다.
원수의 칼이 내 목숨을 겨냥하고 있다면 우리 생명이 경각에 달려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큰 현실이 있다는 사실에 시인은 눈을 떴다. 성도에게 있어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죄악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그 영혼이 사단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그는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요 죽음의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육신의 죽음은 필연적인 것이다. 원수의 칼을 피해 위기에서 벗어났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그 생명이 죽음으로 종결된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영혼이 주님의 은총을 받지 못하고 용서를 얻지 못한다면, 그 생명은 영원한 지옥 형벌을 면할 수 없기에 이것보다 더 절실한 문제는 없다.
다윗은 이 사실을 깨달았기에 사단의 수렁에서 건져주실 주님을 의지하는데 그의 온 몸을 던진다. 1절에서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라는 구절이나, 2절에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5절에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 15절에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앙망함은” 21절에 “내가 주를 바라오니” 등에서 볼 수 있다.
만약 우리의 노력으로 원수의 압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굳이 주님께 기도하며 매달릴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땀과 노력과 지혜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에 능력의 주님께 의지하게 된다. 이처럼 사단의 궤계에 놓인 자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없다. 그래서 그 주를 우러러보며, 앙망하고, 종일 주를 바라보는 것이다.
주의 도, 주의 길을 가르쳐 달라고 호소하는 시인의 심정을 헤아려 보자.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면 그는 갈 길을 알지 못하는 자로 절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인자, 긍휼, 용서를 받지 못한 자 또한 같다.
시인은 이 대목에서 여호와의 언약을 거론한다. “여호와여 내 소시의 허물을 기억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을 인하여 하옵소서(7절)”라고. 이것이 무슨 뜻인가? 세상에서는 각자의 행위에 따라 평가하고 대우받는다. 열심히 노력한 자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주어지고, 아껴 모았으면 그 모은 것을 쓰면서 즐기는 것이 아낀 자의 몫이다. 그러나 성도는 그들의 행위에 따라 처분하시지 않고 주님 자신의 자비와 용서로 대우하시는 분이다.
“여호와의 모든 길을 그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10절)”라는 고백은 하나님의 약속을 철저히 믿고 의지하는 성도의 모습이다. 만약 주께서 이런 약속을 주시지 않았다면 이런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14절)”라는 말씀을 보면 결국 하나님은 자기 택한 백성에게 자신의 언약을 주어 알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원수의 칼 앞에서 여호와의 구원을 요청하는 다윗이 결과적으로는 육신을 안전하게 지켜 보살펴 달라는 것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면서 그 언약에 따라 자신을 용납해 달라는 쪽으로 방향이 옮겨간다. 이것은 그가 진짜 대적, 원수가 누구인지 깨달았다는 말이다.
우리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는 대적은 무엇인가? 내 육신의 생명을 좌우하는 이 땅의 물질인가, 아니면 끊임없이 우리를 주님의 은총에서 떼어 놓으려는 사단의 음모인가? 따지고 보면 사단의 작전은 연약한 우리 육신을 공격하면서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잊게 해서 영원히 파멸시키려는 것이다.
여호와의 언약과 사단의 궤계를 알게 하신 우리 주님께 감사하고, 사단의 세력을 무력화시킨 주님의 십자가 능력만 의지하며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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