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어린 시절 양을 치는 목동으로 살았다. 그런 탓에 시편 여러 곳(79:13, 80:1, 95:7, 100:3 등)에서 하나님을 목자로 이스라엘 백성을 양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특히 본문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관점으로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서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럼 과연 그가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는 양과 목자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서 그 내용을 음미해 보자.
1절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고백을 했다. 이것은 자신을 양으로 규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만약 자신이 어리석은 양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여호와가 목자라는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극히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자신을 발견한 자만이 여호와를 의지하게 된다.
직접 목자의 생활을 했던 다윗은 누구보다도 양을 잘 안다. 양은 눈이 밝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해서 스스로 물 있는 곳이나 풀이 있는 곳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 그리고 워낙 약하고 느려서 다른 짐승들에게 잡아먹히기 일쑤다. 이렇게 나약한 양이 험난하고 메마른 사막 지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기에 양에게는 반드시 목자가 있어야 하고, 그런 목자의 보살핌을 받는 양은 아무것도 염려할 일이 없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양은 스스로의 힘과 지혜로 살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신의 힘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거나 애쓰지도 않는다. 그냥 목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목자의 인도 따라 살아갈 뿐이다.
성도는 바로 이런 자이다. 여호와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분의 이끄심대로 순종하며 산다. 스스로 힘을 기르고 지혜를 쌓아 자신의 판단과 노력으로 살아가는 자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강할 이유도 없고, 힘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나는 연약하지만 나를 지키고 보살피는 목자가 계시기에 전혀 부족함을 모르고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2절)”라는 표현은, 여호와가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이끄셔서 성도는 안심하고 그분을 따라가면 된다는 굳은 믿음이 깔려 있다.
양이 스스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 나서기 전에 목자가 모든 것을 다 알아서 챙긴다. 지금 풀을 먹어야 할 시점인지 아니면 물을 마셔야 할 때인지 혹은 초장이나 물가에서 누워 쉬어야 할 때인지를 적절히 판단해서 인도한다.
3절에서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라고 했는데, 이 대목에서는 양과 목자의 관계를 영적 의미로 승화시킨 표현으로 ‘죄로 말미암아 죽은 우리를 그분의 대신 희생으로 살리시는 은총을 나타내고 있다.
만약 우리를 인도하는 목자가 육신의 양식만 제공한다면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말을 못할 것이다. 우리에게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영의 양식이며, 은혜와 용서로 우리를 감싸는 그분의 사랑이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라는 구절은 깊이 되새겨야 할 말씀이다. 우리는 양을 위해 목자가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이것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본문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여호와가 목자가 되셔서 자기 양을 돌보는 것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그렇게 하신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세상만사를 자기중심으로 생각한다. 나를 위해 하나님이 계셔야 하고, 그 하나님은 나의 요청을 들어주셔야 하고, 또 모든 사물과 사건이 나의 유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다. 내 중심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중심이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이 움직인다. 이런 차원에서 여호와는 자기 이름을 위해 자기 양을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4절에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양 스스로 위험한 곳으로 간다는 것이 아니라, 목자의 인도에 따라 길을 가는데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여겨질 만큼 위험한 길도 걷게 된다는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도 결코 양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안전하게 인도한다는 것이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5절)”라는 표현은 그야말로 감사와 감격에 찬 탄성이다. 얼마나 넉넉하고 풍족했으면 넘친다고 했겠는가? 성도가 주님의 품 안에 거하는 삶은 이처럼 평화롭고 풍성하며 만족한 상태다. 이보다 더 완벽한 조건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6절)”라는 표현 역시 같은 의미이다. 주 안에서 안온한 삶, 무엇 하나 부족함을 모르는 만족한 삶의 지속, 이것이 바로 목자의 인도를 받는 양의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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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UPDATE: 2024.04.17 - 20: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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