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시는 대적들로부터 멸시와 조롱을 당하는 상황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는 내용이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히스기야 왕 때 앗수르 군대가 쳐들어와서 벌어진 일(왕하18:13-19:7)을 상상하며 본문을 생각해 보자.
1절에 “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라고 했다. 히스기야 왕이 앗수르 대군의 침략을 당하고, 또 적장 랍사게가 여호와 하나님을 조롱하고 이스라엘을 멸시하는 말을 듣게 된 때에, 신하들을 선지자 이사야에게 보내 기도를 요청했고(왕하19:2-4), 자신도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앗수르 왕이 보낸 편지를 펴놓고 그 앞에서 기도했다(왕하19:14).
2절 “종의 눈이 그 상전의 손을, 여종의 눈이 그 주모의 손을 바람 같이 우리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를 기다리나이다.”
히스기야 왕이 선지자에게 기도를 요청하고, 본인도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하는 모습은 ‘종이 상전을 쳐다보며 긍휼을 기다리는 것’처럼 달리 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자기의 힘과 지혜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만 의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진퇴양난이 인간의 입장에서는 피하고 싶은 끔찍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자기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유발하시는 필수적인 사건이다. 이런 사태를 만나야 하나님의 긍휼을 맛보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3절 “여호와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이 구절은, 앗수르 왕의 말을 전해 들은 히스기야 왕이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신하들을 불러 이사야 선지자에게 보내며 하는 말이 “오늘은 곤란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가 임산하였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왕하19:3).”라는 말을 한 상황과 너무도 흡사하다.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하지만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여호와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이것이 시인의 기도이고, 히스기야 왕의 기도이고, 오늘날 성도의 기도여야 한다.
4절 “평안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심령에 넘치나이다.”
히스기야가 통치하는 유다를 침략할 때의 앗수르는 굉장한 강대국이어서 주변 여러 나라를 집어삼켜 천하에 두려울 것 없는 기고만장한 때였다. 이것을 ‘평안한 자’라고 묘사했고, 유다를 침략해서 “열국의 모든 신 중에 누가 그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능히 건지겠느냐(왕하18:35)?”라고 지껄인 상황을 ‘교만한 자’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보면 될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겉으로 드러난 상황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판단한다. 하지만 이 땅에서 펼쳐지는 모든 일은 예수님을 주로 드러내기 위한 배치물일 뿐이다. 그러기에 언약적 관점에서 모든 것들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 외에는 다 헛된 해석이며 망상이다.
앗수르가 강대국이 되어 주변 나라를 침략해서 집어삼킬 때는, 자신들이 섬기는 신이 자신들을 도와 평안을 누린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고방식은 언약을 모르는 자들이 가지는 보편적 인식이다. 내가 하는 일이 술술 잘 풀리고, 남들이 나에게 굴복하는 상황은 선악과를 따먹고 스스로 신이 된 것으로 착각하는 인간들에게는 더없는 행복이요 즐거움이다.
하지만 피조물이 신이 되는 경우는 없다. 피조물은 창조주의 영광을 위해 지어진 존재이기에 영원히 피조물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그런데 왜 피조물이 신의 자리를 탐하는 것일까? 이는 사단의 유혹을 받은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하셨는데, 사단은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창3:5).”라고 속였다.
인간은 선악을 알 필요도 없고,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사단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자신이 선악을 분별할 수 있고 또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하나님의 언약은 모든 것의 기준이고 잣대다. 언약을 벗어나 뭔가를 생각하는 것은 다 사단의 유혹이다. 피조물은 강할 필요도 없고 강해서도 아니 된다. 그런데 인간은 강한 자가 되기를 원하고 지혜를 갖기를 원한다. 이것이 바로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간 것이다.
인간에게 참 지혜가 왔다면 그것은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이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받아 자신이 무지한 자란 것을 고백했다.
내가 지혜를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은 지혜자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이 언약(말씀)을 우리에게 주셨기에 그 언약을 믿고 의지하는 자만이 지혜로운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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