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히브리어 알파벳 열한 번째인 카프(כ)로 시작되며,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시인의 열정을 만나게 된다.
81절에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오히려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라고 했다.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다’고 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피곤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시인은 구원을 갈망하는 일로 지쳐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피곤함에도 포기하지 않고 더욱 주의 말씀을 갈망한다고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것은 주의 말씀에 사로잡힌 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고귀한 것이 주의 말씀임을 깨닫게 되었기에 오직 말씀에만 집중하게 된다.
82절에는 “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시겠나이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니이다.”라고 했다.
이 구절에서도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다’고 함으로 ‘주께서 언제쯤 나를 안위해 주실까’를 고대하면서 지쳐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안위’는 육신의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순간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주님의 약속이 이뤄질 날을 기다리다 지켰다는 점이다. 즉 주님이 반드시 언약을 성취하시는 분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다.
83절 “내가 연기 중의 가죽병 같이 되었으나 오히려 주의 율례를 잊지 아니하나이다.” 이 구절도 81절과 같이 앞의 문장과 뒤의 문장을 연결하는 ‘오히려’를 사용함으로 예상과는 정반대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연기 중의 가죽병’은 불과 연기로 그을려 말라비틀어져 쓸모가 없음을 나타낸 것으로, 자신의 처지를 이와 견주고 있다. 왜 시인은 이런 처지가 되었을까? 그 이유는 말씀 때문이다. 말씀 때문에 말라비틀어진 상황이 왔다면 이제 말씀과 거리를 둬야 할 텐데 ‘오히려 주의 율례를 잊지 아니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처럼 성도는 주님의 말씀에 의해 끌려가는 자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자신을 저주하고 떠난 베드로에게 찾아가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21:18).”고 하셨다. 여기서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시는 분이 예수님(말씀)이시다.
84절은 “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나이까 나를 핍박하는 자를 주께서 언제나 국문하시리이까?”라고 했다. 이 역시 언약에 바탕을 둔 질문이다. 성도를 핍박하는 것은 곧 주님을 핍박하는 것이고, 이들에겐 반드시 주님의 심판이 임하게 되어 있다. ‘국문’은 죄인을 심문하는 것인데, 반드시 이런 날이 올 것을 믿고 있기에 이런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85절은 “주의 법을 좇지 아니하는 교만한 자가 나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팠나이다.”라고 했다. 흔히 교만하다고 하면, 잘난 척하고 자신을 뽐내며 남을 깔보는 태도를 말하는데, 본문에서 ‘교만한 자’는 ‘주의 법을 좇지 아니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주의 법을 떠나면 다른 법을 내세우게 되고 이것이 바로 교만이다.
주의 법을 떠난 자들이 웅덩이를 파고 성도를 빠뜨리려는 것은, 자신의 기준이 옳다고 생각하기에 그 기준에서 벗어난 자를 자기 기준에 굴복시키기 위해 이런 악한 짓을 하게 된다. 이는 사단의 지시를 받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86절 “주의 모든 계명은 신실하니이다 저희가 무고히 나를 핍박하오니 나를 도우소서.” 이 구절도 앞뒤 문장이 잘 연결되지 않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깊이 생각하면 필연적 관계가 있다. ‘주의 계명은 신실하다.’는 것은, 주가 말씀(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의미다. 그러기에 ‘까닭 없이 성도(말씀을 믿고 기다리는 자)가 핍박당할 때’ 주님이 외면하지 않으실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여기서 ‘나를 도우소서’라는 말을 ‘나의 편이 되어 나를 괴롭히는 자를 벌하고 나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언약의 하나님은 언약을 이루심으로 자신을 드러내신다. 그러기에 성도의 고통은 언약이 외면당할 때다. 그러니 ‘나를 도우소서’라는 기도는 ‘언약의 신실함을 보여주소서’라는 의미로 읽으면 된다.
87-88절 “저희가 나를 세상에서 거의 멸하였으나 나는 주의 법도를 버리지 아니하였사오니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로 소성케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입의 증거를 내가 지키리이다.”
이 구절은 본문의 결론이다. 시인은 언약(말씀) 때문에 고통을 받았는데, 이 구절에서는 ‘저희가 나를 세상에서 거의 멸하였다’고 표현한다. 성도의 존재 자체를 없애버리기 직전까지 간 것으로 읽을 수 있지만, 그보다는 말씀이 잊혀질 상황까지 간 것으로 보면 된다.
이렇게 될수록 성도는 더욱 주님의 법을 되새길 수밖에 없다. 만물이 말씀으로 지은 바 되었고, 말씀대로 움직이고, 말씀대로 결론이 맺어지게 되어 있다. ‘나를 소성케 하소서’는 ‘거의 멸하였으나’와 반대 상황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성도 개인의 존재에 집착해서는 아니 되고 ‘말씀의 소멸’과 ‘말씀의 소성’으로 보아야 한다.
사단이 주님의 말씀을 짓밟아 없애려 해도 주님은 말씀이 살아서 움직임을 보여주시고, 성도는 이런 주님을 자랑(증거)하며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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