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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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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서경수
Subject   시편 116:10-19절

  시인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 찬양하며 살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그를 감싸고 있는 환경은 순탄하지 않다. “내가 큰 환란을 당하였도다(10절).”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믿음으로 인한 환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성도가 세상에서 미움받는 이유를 예수님은 이렇게 설명하셨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소속이 전환된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15:19).”

  11절에서는 더 심각한 말을 한다.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라”고. 이것은 세상의 보편적 시각이 아닌 언약적 관점에서 한 말이다.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하나님 편에서) 세상을 보니, 세상은 온통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처럼 되려고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창3:5-6)은 자신이 하나님 행세를 하며 살아간다. 즉 내가 원하는 것은 가져야 하고, 내가 바라는 것은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마음 자체가 허황된 것(거짓)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만들어진 세상인데 인간을 위한 세상으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자들을 어찌 ‘거짓말쟁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12-1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라고 하면서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라고 했다.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그 은혜를 감사, 찬양하는 것이 성도의 책무이기에 ‘구원의 잔(진노의 잔과 대비되는 개념)’을 들고 자신을 불러주신(소속을 바꿔 주신) 그 주님의 이름을 노래하겠다는 것이다.

  15절에서는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라고 했다. 이것은 사람의 시각과 하나님의 시각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사람들은 죽지 않고 계속 살고 싶어서 죽는 순간까지 안간힘을 쓰며 산다. 육신의 관점에서 죽음은 더 이상 기대도 희망도 없는 모든 것이 끝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혀 달리 보신다. 특히 성도가 죽는 것을 귀중하게 여기시는 이유는, 죽음 이후에 주님과 영생하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성도에게 죽음은 두려워 피할 일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기에 오히려 반기게 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후5:8).”고 했다.

  16절에서는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라고 했다. 자신을 ‘주의 종’이라고 한 이유가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을 결박에서 풀어주셨기 때문이다. 이 결박은 사단의 권세 아래 놓은 상태인데, 이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기에 그는 더 이상 사단의 종이 아닌 여호와의 종으로 소속이 전환된 것이다.

  세상에서는 자신을 ‘누구의 종’이라고 소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간혹 대단한 실력자를 모시는 ‘비서(종)’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경우는 있지만, 그것은 자기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고, 본문에서는 자신을 과시하기는커녕 죄인임을 당당히 밝히면서 그 죄의 속박에서 건져주신 분에게 자발적으로 종이 됨을 자랑하고 있다.

  피조물인 인간은 절대 자율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 어떤 경우에도 주인은 아니라는 말이다. 사단의 종이든지 아니면 주님의 종이든지 둘 중 하나다. 이것을 알게 된 자는 이미 하나님의 영이 찾아온 자이다.

  시인처럼 자신이 죄와 사망의 결박에 묶여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그 결박을 풀어주셨다고 하면서 그분의 종이 된 것을 기뻐하고 있으니 말이다.

  죄의 결박에서 풀려나 의의 결박에 묶인 자(주의 종)가 되었기에 그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서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17절).”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18절에서도 기쁨의 탄성이 계속되고 있다. “내가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을지라”고 했는데, 이것은 증인의 삶을 살겠다는 것이다.

  주께서 나를 사단의 결박에서 풀어주셔서 구원의 잔을 받게 되었으니 그 은혜와 사랑을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면서 주님의 이름을 높이고 자랑하겠다는 것이다.

  19절 역시 같은 다짐이다. “예루살렘아, 네 가운데서, 여호와의 전 정에서 내가 갚으리로다.”라고 했는데, ‘예루살렘 가운데서’는 모든 사람 앞에서, ‘여호와의 전 정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그 은혜를 자랑하며 감사하겠다는 말이다.

  성도는 주님께 감사하고 경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값으로 지불하고 샀기 때문이다(고전6:20). 그래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기에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을 수밖에 없다(롬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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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11.26 -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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