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백성이여, 내 교훈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내가 입을 열고 비유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1-2절) 라는 말씀을 보면, 마치 대통령이 온 국민을 상대로 중대한 사실을 공포하는 기자회견이나 담화문을 발표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럼 도대체 어떤 교훈이기에 ‘들으며’ ‘귀를 기울이라’고 하는지 그 내용을 파악해 보자. 우선 “비밀한 말”이라고 했는데, 이 부분부터 해명할 필요가 있다. 통상적으로 비밀이라고 하면 알려지지 않은 사항이라야 비밀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3절에서 “우리가 들은 바요 아는 바요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전한 바라”고 한다. 이미 조상들로부터 전해들은 말씀이 어떻게 비밀이 되는가?
이사야 6장 9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구절이 “비밀한 말”의 의미를 드러내는 좋은 구절이다. 이미 들었지만 깨닫지 못하고, 이미 본 것이지만 알지 못하니 이것이 비밀이 아니고 무엇이랴!
우리는 흔히 ‘십자가의 도’ ‘복음의 비밀’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처음 듣는 소리여서 생소하다거나 너무 수준 높은 이론이기에 보통 사람들의 두뇌로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어서 ‘비밀’ 혹은 ‘도’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학식이 높고 똑똑한 사람만 믿고 깨닫게 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질 텐데 결코 그런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는 무식한 사람이 많았고,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진들을 보면 학식의 유무와 상관없이 성령의 능력으로 십자가 복음을 믿고 깨닫게 된 것을 본다. 그러니 복음의 비밀은 어렵고 생소한 내용이어서 비밀이 아니라 인간의 육으로 깨달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영의 일이기에 비밀인 것이다.
복음의 비밀을 말하는 이유를 6-8절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저희로 그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한 세대와 같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제 시편 기자가 ‘비밀한 말’ ‘교훈’을 말하면서 ‘귀를 기울이고 들으라’는 이유가 밝혀졌다. 복음의 비밀을 알지 못한 자들은 썩어질 세상에 소망을 두는 어리석은 자이다. 소망을 둘 수 없는 곳에 소망을 두고 있으니 이보다 더 어리석은 자가 있으랴! 잠시 있다 사라져 버릴 것들에 기대를 걸고 있다가 소멸해 버리면 그들의 기대 자체는 날아가 버리고 만다.
내 몸에 소망을 둔다고 해도 70-80년 지나면 늙고 병들어 결국 죽고 만다. 물질에 소망을 둔다고 해도 그 물질도 언젠가는 흩어지고 변하고 소멸된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머릿속에 상상하는 육의 모든 것들을 다 이와 같은 것뿐이다.
그래서 소망은 이 땅, 이 세상의 것이 아닌 하늘의 것이 소망이 되어야 한다. ‘소망을 하나님께 두라’는 것은, 하나님께는 영원한 것이 있으며 소망을 둘 만한 것이 있기에 그런 말씀을 던지는 것이다.
이제 복음의 비밀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본문에서는 “여호와의 영예와 그 능력과 기이한 사적”(4절)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연결된다.
여호와 하나님은 언약을 따라 일하시는 분이다. 즉 자기 계획을 미리 세우시고 그 백성에게 알게 하신 후, 그 약속하신 대로 모든 것을 성취해 가시는 분이란 말이다. 그리고 이 약속 성취를 이뤄가는 과정에서 그분의 능력이 나타나고 기이한 사적이 등장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벗어나 가나안으로 왔다. 이것은 그들이 독립운동을 해서 이룬 성과가 아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편하게 살기를 원했지 고생스럽게 애굽을 탈출해서 새로운 땅에 정착하는 위험과 역경을 원치 않았다. 이것이 육의 한계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가나안으로 이끄실 것을 계획하셨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해 어린양의 희생을 감행하셨다. 이것은 결국 자기 아들의 희생을 통한 자기 백성을 만드시는 하나님의 전략이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이스라엘을 만들었다. 이것을 신약적으로 말하면 주님 십자가에 흘리신 피가 성도를 낳았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사53:5)이라고 하셨다. 성도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내 죄악을 발견한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라는 말씀에서 성도는 십자가를 생각하며 사죄의 용서에 감사, 감격한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6)라는 말씀을 보면서, 내 행위를 똑바로 하겠다는 다짐 대신에 십자가를 통해서만 의롭다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그 십자가만 소망하게 된다. 이런 자가 ‘소망을 하나님께 두는’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