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시편은 첫 절부터 아주 심각하게 시작된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주의 치시는 양을 향하여 진노의 연기를 발하시나이까”(1절) 라고.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이런 구절을 대하면 우리는 우리의 상식선에서 어떻게든 이 말씀을 풀어보려고 애를 쓴다. ‘과연 이 구절이 문자 그대로 하나님이 성도를 버린다는 말인가? 어떻게 하나님이 자기 양을 향해 진노를 발하실 수 있는가? 이것은 어디까지나 시적 표현으로 하나님이 범죄한 자기 백성을 사랑하는 차원에서 꾸중하고 채찍 하는 것을 묘사했는데 당하는 성도의 입장에서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것일 거야.’ 뭐 이런 식으로 해석하면서 스스로 납득하려 한다.
우선 위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와 같은 기도를 드린 예수님의 상황으로 가 보자.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 같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셨다.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26:39) 라고.
그러나 예수님은 결국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이것은 인간의 지혜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죽게 내버려 두시다니.
예수님이 마지막 숨을 거두시기 직전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 라고 울부짖고 운명하셨다. 그러니까 정말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을 버리셨다는 말이고, 저주의 잔을 마시게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독생자도 버리셨는데 성도를 버린다는 것은 크게 심각할 것도 없는 일이 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4) 라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이 땅 그 어떤 인간도 순순히 예수님을 영접하고 스스로 그분의 사랑을 깨달아 감사하는 자는 없으며,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열심과 충성을 바치지만 그 모든 행위들이 결국은 주의 이름을 모독하는 짓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도가 주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경험을 꼭 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길 수 있겠지만, 이런 버림받음을 체험하지 못한 자는 결코 자기 행위에서 비롯된 의를 포기하지 못하기에 반드시 이런 과정이 있어야 한다.
생각해 보라.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를. 지금 시인은 주님으로부터 그런 뼈아픈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방인으로부터 성전이 파괴되고 불타는 광경을 목격했고,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선지자마저 자취를 감췄고, 이런 비참한 일들이 언제나 끝이 날지 아무도 말해 주는 사람이 없다. 그야말로 절망이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에게 등을 돌릴 수는 없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인도하시고 이끄셨던 그분의 능력과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언약을 돌아보소서” 하면서 다시금 용기를 내 주께 부르짖는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 죄를 미워하시고 벌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너무도 잘 드러낸 사건이다. 사랑하는 아들이지만 죄를 담당한 죄인이기에 가차 없이 버리시고 죽게 만드신 분이 진짜 하나님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이 이방 나라에 짓밟히고, 특히 주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세워진 성전이 파괴되는 일은 성도로서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수치요 아픔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방인이 성전을 파괴하기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멸시했고 버렸다.
우리는 늘 하나님을 배반하고 거부하는 것이 불신자들의 짓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성도라는 우리들이 꼭 이런 모습으로 살아간다. 입술로는 주를 찾고 부르지만 그 마음은 세상을 의지하고 이 땅의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즉 주님을 찾는 이유가 주님의 이름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내 만족을 위해 찾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신자 불신자 할 것 없이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들은 주님으로부터 심판받아 마땅한 자들이다. 그 누구도 하나님이 아끼고 보살필 만한 자격자가 없다. 그러니 주님이 그들을 버리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성도가 기대할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주님의 언약이다. 인간의 행위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을 수밖에 없는 악행뿐이라 더 이상은 자신의 의로움에 기대할 수 없기에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독생자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언약을 돌아보소서”(20절) 하고 기도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