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절 말씀에서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라고 했는데, 다윗에게 있어서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은 어떤 것을 두고 하는 말일까? 그리고 ‘반석’은 또 무엇을 일컫는 것인가?
인생을 살다보면 별의 별 일을 다 겪게 마련이다. 억울한 일도 당하고 괴로운 상황도 맞이한다. 그리고 참담한 경험도 하게 되며 진퇴양난의 곤경에 빠지게도 된다. 이런 난처한 형편에서 벗어나 일상의 평화로운 생활로 되돌아 온 자가 과거의 암담했던 처지를 떠올리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 본 시편의 내용일까?
물론 그런 식의 이해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이런 식으로만 해석하게 된다면 성경에 기록될 말씀은 아닐 것이다. 최소한 성도들에게 들려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된 것이라면 그보다는 훨씬 더 의미가 깊을 것이다.
성도는 육신적으로 고통스럽고 원치 않는 환경이 닥쳐와서 그것 때문에 몸부림치고 가슴아파하는 경우는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 이런 것들은 주께서 견딜 만 하게 하시고 또 위엣 것을 바라보게 하셔서 잠시 잠간의 고통으로 끝난다.
그런데 죄 문제만큼은 스스로 어찌할 수 없고 그로 인한 마음의 고통은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이다. 하나님으로부터의 버림받음은 세상 그 무엇으로도 위로받을 수 없는 것이며, 이런 막막함은 좌절과 공포의 짓눌림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다윗은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 무거운 죄의 짐을 벗겨주시고 반석위에 자기 백성을 올려놓으셨다. 그래서 더 이상은 죄가 주관치 못하게 하셨고, 다시는 이런 구덩이에 빠지지 않도록 견고하게 지키신다.
이런 주님은 인간의 손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다. “제사와 예물을 기뻐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치 아니하신다”(6절)는 말씀이 바로 그런 의미에서 한 고백이다.
이처럼 자기 죄의 무게를 실감하고 그 엄청난 고통에서 해방된 자가 느끼는 감사와 사랑은 모든 것을 새롭게 느끼고 바라보게 만드는데, 과거 내 노력과 정성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겠다는 발상 자체가 얼마나 교만하고 허망한 것이었나를 발견하게 된다.
내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뭔가를 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오로지 자기 아들의 행위만 받으시기에 성도는 그 아들의 행위에 실려 하나님께 나아갈 뿐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아들을 제쳐둔 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몸짓은 다 죄악의 한 파편일 뿐이다.
11절에서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 그치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라고 외치고 있는데, 이 구절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는 주님의 긍휼에서 단 한 순간도 벗어나서는 살 수 없는 자란 것이다. 한 번 긍휼을 얻었기에 이제는 내 스스로 그 긍휼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식의 삶이 가능하지 않다는 말이다.
날마다, 매 순간 주의 긍휼을 입어야 하고, 주의 인자하심으로 항상 보살핌을 받아야만 산다. 마치 가나안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날마다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었고, 항상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를 받은 것처럼.
17절에서 다윗은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오 건지시는 자시라”는 놀라운 고백을 하는데, 왜 이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을까? 누가 봐도 다윗은 가난한 자가 아니며, 궁핍이란 단어를 다윗의 생애에 붙인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그러나 본인이 스스로 가난하고 궁핍하다고 했으니 누가 시비를 걸 상황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다윗은 이런 표현을 했을까?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왕이 가난하고 궁핍하다면 세상 모든 자들이 이와 같을 수밖에 없단 말인데.
사실 다윗은 경제적으로나 세상적 관점에서 이런 표현을 쓴 것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지극히 나약한 죄인이요, 허물과 부족뿐인 자임을 고백한 내용이다. 스스로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것은 전혀 할 수 없는 나약한 자요, 아무것도 자기 것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는 빈 털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셔야만 살 수 있고, 그분이 이끄셔야만 걸을 수 있는 자란 말이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 자신이 가난하고 궁핍하다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는 자야말고 그분의 긍휼과 사랑을 입은 자이다.
주 앞에 성도는 실로 가난한 자이다. 세상 것을 아무리 많이 가졌다 해도 궁핍하기는 마찬가지다. 진정 성도를 살리는 것은 하늘로부터의 양식인데, 이것은 우리가 소유할 수 없고 주인 되시는 주께서 주셔야만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성도는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 그치지 마소서’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