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결심하고 다짐한다고 해서 그것을 지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윗의 고백을 통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그는 자기 행동을 조심하고 특히 혀로 범죄치 않기 위해 입에 자갈을 먹여 악인에게 흠 잡히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한다.
불신자들에게 덕 되지 않는 행위를 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을 삼가야겠다는 생각은 신자이면 누구나 갖는 마음이다. 그런데 이 다짐이 결코 지켜질 수 없다는 것이 다윗의 고백을 통해 밝혀진다.
그는 자기 결심을 실천하기 위해 아예 입을 다물고 침묵한 나머지 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생활을 통해 자기 다짐을 성취시켰는가 하면 그것이 아니라 도리어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 침묵하고 살자니 속에서 불이 올라와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이런 자기붕괴의 경험을 하게 된 다윗은 놀라운 고백을 한다.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4절)라고.
과연 인생이란 것이 무엇인가? 내 결심과 의지에 따라 내 삶을 조종할 수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인가? 그리고 그 결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또 그분의 복을 받아 행복을 영위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인가?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 뿐이니이다”(5절) 라는 고백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의 한평생이란 것이 주님 보시기에는 손바닥 넓이보다 좁은 것이기에, 우리가 성공했다고 자랑하고 큰 업적이라고 자부심을 갖는 그 일조차도 허망한 것이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우리들이 뭘 결심하고, 무슨 선한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목표를 정하고 부지런히 설쳐대도 그것이 내 욕망의 표출일 뿐 하등 의나 선을 도출해 낼 수 없는 것이기에 인생은 그림자와 같을 뿐이다.
이런 깨달음이 주의 은혜로 임하게 될 때, 더 이상은 자기 행위에 대해 의미를 두고 살아가지 않게 된다. 즉 자기 자신에게 희망을 걸지 않는다는 말이다. 대신 모든 것의 주관자 되시는 주만 바라보게 된다.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7절) 라는 말씀처럼 이것이 바로 성도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고백이다.
우리의 죄와 허물도 그분의 십자가에서 해결될 수밖에 없고,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것도 주님의 날개 그늘 외에 다른 곳은 없다. 더 이상 내 힘으로 의를 쌓고 선을 실천해 보리라는 만용은 버려야 한다. 내 결심과 실천력으로 뭔가를 이뤄보리라는 다짐도 포기해야 한다.
내 결심으로 입을 열지 않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 대신 주께서 하신 일을 깨닫게 되면서 스스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될 때 잠잠할 수밖에 없다. 나는 잠잠해야 하고 대신 주님은 잠잠하시면 안 된다. 그분이 움직이시고 말씀하시고 이끄셔야만 성도는 참 평안과 기쁨을 맛보게 된다. 즉 내가 설쳐대는 대신 주님이 부지런히 일하셔야 하고 그분이 말씀하셔야만 된다. 이것이 다윗이 깨닫고 고백한 본 시편의 내용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행위에 의미를 둔다. 그러기에 그 결과에 대해 애착을 갖는다. 그 결과물이 타인의 칭송이 따른다면 그것은 더욱 더 고이 간직하고 싶은 보석이 된다. 그러나 주님의 은총이 밀려와 그 사랑을 맛보게 된 자는 정 반대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분의 놀라운 능력 앞에 자신의 모습은 한없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워 차라리 자신의 존재 자체를 무위로 돌리고 싶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죄일 뿐임을 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업적을 드러내고 자기 행위에 대해 의미를 둔다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생의 자랑이란 것이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성도는 안다. 그러기에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스스로 자랑거리를 생산해 내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게 된다.
내가 움직이지 않고 일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여기는 자들이 있다. 이런 자는 주님의 일하심을 모르는 자이다. 주께서 부지런히 움직이시기에 모든 것이 다 완벽하게 이뤄진다. 내가 실천해서 뭔가가 이뤄지는 것이 아닌 주님의 약속과 그 실천 능력이 모든 것을 이뤄내신다. 그러니 우리는 잠잠히 그분의 하시는 일을 바라보며 따라가야 한다. 그리고 그 솜씨를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