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시편 116:1-9절
이      름: 서경수
작성일자: 2022.11.19 - 16:03

  본 시는 ‘은혜를 갈구하는 성도의 기도’ 이런 제목을 붙이면 좋을 것 같다. 시인은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2절)”라고 하면서, 그 이유를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1절)” 또 “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2절)”라고 했다.

  이 문구를 보면, 하나님은 시인의 기도에 응답하셨기에 평생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살겠다는 다짐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바를 하나님께 아뢰면 응답해 주신다는 말인가?

  오늘날 다수의 기독교인이 이런 논리를 펴면서 하나님께 기도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께 기도하면 응답해 주신다.’는 말을 하고 있지 않다.

  시인은 어떤 상황에서 여호와께 기도하게 되었는지 3절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란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라고 했다.

  이는 자신이 처한 환경(죄 아래 갇혀 있음)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구원할 분은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없음을 알았기에 여호와께 간구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인은 언약에 근거해서 여호와께 부르짖고 있다는 말이다.

  4절을 보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라고 했다. 여기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이유가, 여호와는 ‘언약의 하나님’이기에 그에게 ‘내 영혼을 건지소서’라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해 보자. 하나님은 언약을 주신 분이고, 그 언약대로 만사를 처리하시는 분이다. 따라서 성도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언약에 바탕을 두어야 하고, 그렇게 될 때 응답하시는 분이기에 그 하나님께 평생 기도하며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내가 원하는 바를 얻겠다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소망하며 살겠다는 것이다.

  5절에서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자비하신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역시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에서 이런 표현을 사용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만약 언약에 근거하지 않은 ‘은혜, 의, 자비’를 생각한다면 이상한 형태로 흐르게 된다. 세상에서는 언약 없이도 얼마든지 은혜와 의와 자비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언약에 바탕을 두지 않고는 어떤 개념도 말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6절 역시 언약의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다. “여호와께서는 어리석은 자를 보존하시나니 내가 낮게 될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라고 한 것이 바로 그런 의미다.

  구원이란 누군가가 끄집어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전제되어 있다. ‘어리석은 자’와 ‘낮게 될 때’란 표현이 죄인의 처지를 정확히 말한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의식조차 못 하는 것이 ‘어리석은 자’이고, 이런 비참한 처지(낮게 될 때)에서 주께서 건져주셨으니 그 하나님을 영원히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구원 얻은 이후에 내 과거를 돌이켜 보니 내가 사망의 줄에 꽁꽁 묶여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를 건져주신 여호와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된다. 이 말은 기도의 시작이 나(인간)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니, 구원받은 성도가 주님께 감사하며 기도하게 된다. 이것이 정확한 순서이다.

  “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7절).” 이런 고백도 주께서 구원하시니 성도는 ‘평안’을 맛보게 되고, 주님의 긍휼이 얼마나 큰가(후대)를 깨닫게 된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8절).”라는 고백도 구원받은 후에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생존 세계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9절).”라는 말은, 현재의 내 상태가 오직 주님의 언약 성취로 만든 작품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여호와 앞에 행한다’는 것은, 주님의 영광을 위해 만물이 존재하는 것처럼 나 또한 주님의 영광을 위해 현재 이곳에 있다는 의미다.

  지금 내 모습이 비록 초라하고 볼품없어도 이런 상태 자체가 주님의 언약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기에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고전15:10)” 이기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보기에, 그리고 나 자신이 보기에 더 나은 나를 꿈꾸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도외시하는 것이다. 내가 높아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주가 주로 영광을 받으신다면 그것으로 기뻐하며 감사할 뿐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