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서 베드로는 자신을 소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1절)”라고 했다. ‘종’과 ‘사도’는 전혀 다른 개념인데 나란히(병렬해서) 사용하고 있음이 특이하다. 그러나 ‘종’이란 표현도 그리스도와 연관된 말로, 또 ‘사도’ 역시 그리스도와 연결해서 사용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보통 사람들이 자신을 소개할 때 ‘농부, 회계사, 목수, 구청장’이라 말하지, ‘누구의 농부, 누구의 회계사, 누구의 구청장’이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삶 자체가 그리스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나타낸 것이며, 모든 성도가 이와 같은 자임을 깨우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바울 역시 이런 방식으로 자신을 인식하고 말했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할 때는, 자신은 하찮은 신분이며 천한 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할 때는,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자임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내 개인의 목적이나 유익을 위해 행동하고 말하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 말이다.
수신자를 소개하는 대목도 간단하지 않다.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1절)”이라 했다.
이 구절에서는 발신자와 수신자의 관계가 높고 낮음이 없이 동등하다는 것을 말했고, 또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의’가 없으면 ‘믿음’은 성립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믿음’은 주님께 ‘받은 것’이지 스스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2절의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라는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은혜와 평강’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를 알 때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평소에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과 무관하게 ‘은혜와 평강’을 거론할 때가 많다. 예수님 없이도 얼마든지 ‘은혜와 평강’이란 표현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임을 이 구절을 통해서 깨닫게 된다.
3절은 성도의 구원이 어떤 목적으로 주어진 것인지 잘 설명하고 있다. “그의 기이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라는 말은, 생명(영생)은 그(예수)의 기이한 능력으로만 제공된다는 말이고,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는 것은, 주님의 영광과 덕을 선전할 목적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했다는 것이다.
‘구원’이란 말을 들으면 사람들의 반응은 ‘나도 구원 얻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심판은 무서운 형벌이고, 구원은 영원한 행복이니 당연히 구원을 소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구원 얻을 수 있다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신 구원은 당신의 존귀와 영광을 위해 택한 백성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따라서 이런 선물을 받은 자는 오직 그리스도만을 자랑하고 높이게 된다.
4절에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라는 말씀이 있다. 이 구절 역시 구원이 인간 좋으라고 한 일이 아니라 ‘신성 성품에 참여하는 자’로 만들기 위함임을 말하고 있다.
5-6절에서는 신의 성품에 참여케 된 자의 모습을 설명했다. “믿음에 덕을, 덕에 지혜를 지혜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것을 성도가 실천할 항목으로 이해하는 자들이 있으나 그게 아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생명을 얻은 자는 이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세상에서 비칠 것임을 말씀한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성령의 이끄심으로 ‘믿음, 덕, 지혜,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이 터져 나올 것이다. 그러면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고전15:10)”이라 고백하며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된다.
주님의 말씀은 인간이 실천할 내용이 아니라 주님이 이루실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만 주님 홀로 영광을 받으실 수 있다. 만약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을 말씀하셨다면, 그 말씀에 순종한 인간이 높아진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런 경우를 용납하지 않는다.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42:8, 48:11).”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사2:11, 17).”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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