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대제사장의 집에 끌려가서 재판받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님을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찾았지만 얻지 못했고, 또 여러 증인들이 많은 말로 예수님을 고소했지만 그들의 주장이 일치하지 않아 증거로 채택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 때 대제사장이 직접 예수님께 물었다. “네가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라고. 이 질문에 예수님은 의미심장한 답변을 하셨다.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라고.
고소하는 자들이 합당한 증거를 내놓지도 못했고, 증인이란 자들의 말도 서로 일치하지 않아 증거로 채택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계속 침묵하고 계시면 무죄로 풀려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대제사장의 질문에 주저 없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당당하게 밝히셨다.
이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살펴보자.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이라 하셨는데, 이 말씀은 시편 110편 1절(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을 인용한 것으로, ‘하나님이 그 아들을 자기 우편에 앉힌다’는 내용인데, 예수님이 권능자(하나님)의 우편에 앉는다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는 말씀은, 출애굽기 19장 9절(내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네게 임함은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으로 듣게 하며 또한 너를 영영히 믿게 하려 함이니라)을 인용한 것인데, 구름 가운데서 자기 백성에게 임하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므로,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말씀하심으로 자신이 하나님이란 점을 표명한 것이다.
예수님의 답변을 들은 대제사장은 자기 옷을 찢으며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그 참람한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라고 말함으로써 ‘예수는 죽어야 마땅한 자’란 점을 대제사장이 무리들에게 공표했고, 그 후에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뇨?”라며 대중들의 반응을 물었을 때, 그들은 ‘예수는 사형에 해당한 자’라고 화답했고, 어떤 이는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선지자 노릇을 하라’고 놀렸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대제사장이 ‘참람한 말’이라고 규정했고, 무리들도 동의한 것은 예수님이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했으니 이것은 거짓말 중에서 가장 심각한 거짓말이며, 또 그 거짓말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기에 사형에 해당한 자로 결론을 맺게 되었다.
이 장면을 무리 중에 섞여 지켜보던 베드로를 대제사장의 비자(여종) 하나가 알아보고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라고 하니, 베드로는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고 하면서 앞뜰로 나갔는데, 여종이 다시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이 사람은 그 당이라.”하니, 베드로가 또 부인했는데,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너는 갈리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당이니라.”하니, 베드로가 저주하고 맹세하며 “나는 너희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했을 때 닭이 울었고, 이에 베드로가 예수님 말씀을 기억하고 울었다.
종교 지도자들, 군중들, 제자들 크게 세 부류로 나눠 보자. 지도자들은 나라 전체를 이끌어야 할 위치에 있기에 예수님의 돌출 행동과 발언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예수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자들에게 확실하게 그의 실체를 밝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겨 예수님을 잡아 재판 자리에 앉혔고, 결국은 그들의 뜻을 이루었다.
백성들도 예수님이 진짜 메시아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진위를 밝히기를 원했고, 재판 자리에서 거짓임이 드러나 다행이란 생각을 가졌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어떤 입장일까? 본문은 베드로의 처신을 통해 제자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여겼다. 그래서 끝까지 지켜보았는데 결과는 거짓으로 드러났고, 이들 역시 예수님에 대한 기대가 착각임이 드러난 것이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혈안이 된 자들 앞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죽일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내셨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을 십자가에 매달도록 유도하셨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죽으심은 예수님보다 강한 자들의 권력에 눌려 죽임당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죽음에 넘겨져야 하기에 자신을 죽이도록 유도하셨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죽음의 자리로 나아가신 것이다.
이 예수님의 선택은 온 백성이 죄인이란 점을 확실히 드러내신 것이며, 아울러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해서 죽는 속죄양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 앞에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죽인 살인자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을 죽인 살인자를 용서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으심으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건지신 분이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와 아들이 약속하신 십자가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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