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이 예수님을 빌라도(로마에서 파견한 유대 총독)에게 끌고 와 재판을 받게 한다. 자신들의 판결로는 이미 사형에 해당한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그들은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기에 빌라도가 사형 선고를 내려줄 것을 바라고 예수님을 끌고 온 것이다.
하지만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이 설교하다가 민중들에 의해 돌이 맞아 죽는 일이 벌어졌다. 사람을 죽일 권한은 없지만 화가 극도로 치밀어 올랐을 때 법을 무시하고 사람을 죽였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돌로 쳐 죽일 수도 있지 아니한가?
그들이 예수님을 고소한 내용은 ‘그가 스스로 왕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죄목도 참으로 이상했지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끌고 와 재판을 청하니 빌라도는 마지못해 재판에 임하면서 예수님께 심문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이 질문에 예수님은 “네 말이 옳도다.”라고 답하셨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로 예수님을 고소했지만 그에 대해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유대 지도자들에게 시기의 대상이 되어 자신에게 데려온 것으로 판단하고 민중들 생각을 알고 싶었다.
명절을 당하면 백성의 요구에 따라 죄수 하나를 놓아 주는 전례가 있기에 재판장의 위치에 있는 빌라도는 백성들의 마음을 알고 싶어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었는데, 그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요구를 했다. 예수가 아니라 (민란을 꾸미고 살인까지 해서 잡혀 온) 바라바를 풀어달라는 것이었다.
빌라도가 또 질문했다.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는 내가 어떻게 하랴?” 이 질문에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고 답했다.
로마법에 십자가 처형은 극악한 죄인(잔혹한 살인자, 국가 반역자 등)에게만 해당하는 것(바라바 같은 인물이 적격)인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는 것이었다. 빌라도가 바보인가? 예수님이 사형당할 죄가 없다는 정도는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자다. 스스로 자신을 왕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건 ‘과대망상증’이나 ‘정신 이상자’일 수 있으나 십자가에 죽여야 할 죄는 아니다.
하지만 빌라도는 민중들이 한목소리로 요청하니 그들에게 만족을 주려고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었다.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었다. 처음에는 유대 지도자들이 죽이려 했고, 그 일에 백성들이 뜻을 같이했고, 마지막으로는 로마에서 파견 온 이방인 총독까지 합세했다. 각자 이유는 조금씩 달랐으나 결과적으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는 일에 동참케 된 것이다.
신명기 21장 23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이 구절은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예고한 것이고, 예수님은 자기 백성이 받을 저주를 대신 받는 대속의 죽음을 죽어야 했기에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만 했다.
표면적으로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아 죽이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예수님이 스스로 죽음의 자리로 나아가신 것이다.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이유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기 위함이었기에 그는 반드시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해야 했고, 그 죽음은 나무에 달려 저주받는 죽음이어야 했다.
세상 법으로 보나 인간들의 사정, 이치로 보나 예수님은 사형당할 죄가 없고, 특히나 십자가 처형은 더더욱 어울리지 않는 판결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방식으로 죽어야만 했다. 이것을 통해 예수님은 주의 자리에 앉게 되고,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예수님이 주관하신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기에 스스로 세상을 주관하려 하고, 자기 뜻대로 모든 일을 이루려 한다. 그 과정에서 예수님(세상 주관자)을 죽이고 말았다.
내 뜻, 내 만족을 추구하는 삶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짓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기도, 봉사, 신앙생활이 예수님을 거듭 죽이는 일일 수 있다.
엄밀히 따지면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은 예수님을 죽이는 일이다. 왜냐? 인간은 어떤 행동을 해도 자기의 유익을 위해 하기 때문이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내 영광, 내 기쁨을 위해 한다.
십자가 지신 예수님의 영(성령)이 임한 자는 자신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자임을 깨닫게 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가 내 죄를 씻는 피인 것을 믿고 감사하게 된다.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 자가 성도이다. 이것은 성도 본인이 바른 행동을 해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십자가 지신 결과 성사되는 것이다. 그러니 성도가 바라볼 것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