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산 사건 후 산에서 내려오시는 예수님을 큰 무리가 맞이했고, 그 중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선생님, 귀신들린 내 아들을 돌아보아 주옵소서.’라고 간청했는데, 여기에 대해 예수님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라고 꾸짖으신 후, “네 아들을 이리로 데려고 오라.”고 하셔서 그를 고쳐 주셨다.
귀신 들린 자를 고쳐주신 일은 종종 있었던 일이지만 본문에서 주목할 대목은, 귀신 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가 예수님께 나아와 아들을 고쳐달라는 부탁을 듣고 예수님이 화를 내시면서 꾸짖으시는 장면이다.
예수님이 이런 식으로 반응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귀신 들린 아들을 고쳐달라고 부탁한 일이 믿음 없는 패역한 자의 행위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 사람의 요청을 무시하면 될 것인데, 왜 또 고쳐주셨을까? 이런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생한다.
먼저 믿음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일반적으로 ‘믿는다’고 하면, 믿음의 대상이 있어야 하고, 또 믿음의 내용이 있어야 하는데, 성경에서 믿음을 말할 때는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메시아)임을 믿는 것이다.
그동안 예수님은 자신의 메시아 됨을 다양한 방식으로 전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찾은 이유는,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였고, 본문에 등장하는 이 사람도 예수님을 이용해서 자신의 아들이 건강을 되찾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 사람의 태도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대하는 보편적인 모습이고, 이것에 대해 예수님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규정하신 것이다. 자기 자신이 제일 중요해서 늘 자신에게 관심을 두고 살아가는 인간들, 사랑하는 아들이 귀신들려 고생하는 모습이 너무도 안타까워 어떻게 하든 그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몸짓, 이것이 예수님 보시기에 귀신에게 사로잡힌 자들의 양태다.
예수님의 이런 시각은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부모가 자식을 아끼는 마음이 패역한 것이라면 자식을 방치하고 외면하면 패역이 아닌가?
예수님 말씀은 아무리 좋게 해석하려 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이 정도로 인간은 심각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옳다고 여기는 모든 것이 거짓이며, 나의 만족과 기쁨이 나를 파멸의 길로 이끌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하란 것인가?
43절을 보자.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을 놀라니라 저희가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기이히 여길새”라고 했고, 44절에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우리라.”고 하셨다.
사람들이 놀란 것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때문이 아니라, 귀신을 꾸짖어 아이에게서 나가게 하신 일 때문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이 사람들의 손에 넘겨진다는 것이다. 즉 죽임 당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들에게 죽임 당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이 메시아에 대해 예언했고, 그가 고난을 당하고 죽는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지만 어느 누구도 죽는 메시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본문에 등장하는 귀신들린 외아들을 둔 아버지와 하나님 아버지가 대비되고 있다. 외아들을 둔 것은 같은데, 한 아비는 자식을 살리려고 안달이고, 한 아비는 자식을 죽이려고 안달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이 점이다. 왜 하나님은 사랑하는 독자를 죽이려 하시는가?
예수님은 지속적으로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리셨다. 그것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일(아버지가 맡긴 생명을 구원하는 일)이고, 자신이 주의 자리에 등극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는 말씀은, 당신이 죽어야만 구원 얻을 생명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의 약속이다.
인간이 왜 패역한 세대라는 꾸지람을 들어야 하는지 이제 그 이유가 분명해졌다. 아버지와 아들간의 약속을 모르고 엉뚱한 방법으로 살려고 하니 그것이 바로 사단에 사로잡힌 증거요 믿음 없는 자다. 내가 내 아들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하나님과 예수님의 언약을 모르기에 문제다. 예수님이 죽으셔야 생명을 얻게 된다는 점을 모르기에 심각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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