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의 징조는 평안하게 살기를 원하는 자들에게는 공포와 불안을 주는 말씀으로 들린다.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고, 땅에 큰 환란과 진노가 있겠고,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어느 누가 환란, 진노, 죽임 당함, 사로잡힘, 우는 소리, 혼란, 곤고를 원하겠는가? 그러나 종말에는 반드시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덧붙여 하신 말씀이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 너희 구속이 가까웠느니라.”고 하셨다.
언젠가는 마지막(종말) 때가 올 것인데, 어떻게 하면 그 때에 멸망이 아닌 구원을 받을까 궁리하며 살아가는 것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보편적 심성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종말을 거론하실 때 구체적으로 그 때가 언제인지 질문을 한 것이다. 그러나 심판을 피하기 위해 종말의 때를 알려는 자체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종말을 그 누구도 피할 수 없고, 모든 인간은 심판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종말의 징조를 말씀하시면서 끝부분에 ‘너희 구속이 가까웠느니라.’고 하셨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종말에는 온 세상이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하시면서 그 속에서 구원 받는 자가 생긴다는 것이다. 즉 심판 중에 구원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인간들은 선악적 사고방식으로 심판과 구원을 생각한다. 악하게 살면 심판을 받고, 착하게 살면 구원을 받는다고. 그리고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 반대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심판 중에 구원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것이 출애굽 시절 유월절 사건이다. 애굽 땅에 거주하고 있던 히브리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장자를 죽이시던 날 밤, 어린양의 피를 바른 집은 죽음의 사자가 그냥 넘어갔다.
죽음의 사자는 모든 장자를 죽이는 무서운 심판의 대리자로 등장했다. 그러나 어린 양의 피가 문설주와 인방에 있는 집은 넘어갔다. 그 이유는 이미 피가 흐른 것(죽은 것)은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상황은 어린양이 대신 심판을 받았기에 더 이상 심판이 시행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심판 중에 일어나는 구원이다.
구원 받을 자의 행위가 착해서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또 심판 받을 자의 행위가 악해서 심판 받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심판의 대상이기에 심판 받는 것이 당연하다. 단 어린양이 대신 심판 받아 피가 묻은 자는 심판에서 제외된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다.
구원은 심판과 상관없는 별개의 상황이 아니라 심판 중에 구원이 발생한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의 약속이다. 그러니까 구원은 착하게 살았기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심판을 받았기에 주어지는 은총이다.
그럼 왜 주님은 이런 식으로 구원을 베푸시는 것일까? 이유는 하나다. 오직 당신의 은혜와 사랑만 돋보이게 하려는 것이다. 만약 구원 얻은 자의 선행을 근거로 구원이 이뤄진다면 구원은 주님의 은혜가 아니라 구원 받은 자의 공로가 된다. 이것을 주님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분이다.
모든 영광을 홀로 취하시는 분이 주님이시다. 그러기에 피조물에게 영광이 돌아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주님은 심판 받아 마땅한 자를 자신이 대신 심판 받으셔서 건지심으로 자신의 공로를 만방에 전파하기 원하신다.
다시 종말에 대해 생각해 보자.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온 세상에 임한다. 그러니 그 심판이 얼마나 끔찍할 것인가를 상상만 해도 두렵다. 그래서 인간들은 정확한 종말의 때를 알아 그 때가 이르기 전에 철저히 준비하면 심판을 모면할 수 있지 않을까 궁리하기도 하고,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면 그 전에는 좀 편안한 마음으로 살고 싶은 생각도 있다. 그러나 이런 발상 자체가 대속의 은혜를 받지 못한 자임을 스스로 폭로하는 것이다.
인간의 재주로 심판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니 종말을 대비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피조물은 창조주가 하시는 일을 온 몸으로 수용할 뿐이다. 그런데 종말에 일어날 무서운 심판을 말씀하시면서, 심판 중에 구원이 있다는 점을 함께 알려주셨다. 안다고 해서 구원 받는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어린양의 피로 씻음 받은 자는 종말의 징조를 들으면서 감격하게 되고, 진정한 평안이 찾아온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출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