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예수님이 ‘므나 비유’를 말씀하신 내용인데, 11절을 보면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라고 해서, 앞에 어떤 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을 염두에 두고 비유의 말씀을 주신 것이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향해 길을 가시다가 나무위에 있는 세리장 삭개오를 불러 내리시고, 그의 집에 유하겠다고 하시고, 그 집에 가서 그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는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이나 행위에 대해 불만을 갖고 수군거렸다. 이런 분위기에서 예수님은 므나 비유를 추가로 말씀하신 것이다.
11절에 이런 말씀도 있다.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저희는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다’는 것은 십자가 지실 때가 임박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어 자신들의 죄를 사해 주실 것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했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임금이 되어 자신들이 사는 이 땅, 이스라엘이 곧 메시아가 다스리는 천국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잘못된 메시아관, 천국관을 바로잡기 위해 므나 비유를 거론하신 것이다.
비유의 내용을 살펴보자.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오려고 먼 나라로 떠나면서 종 10명에게 각각 한 므나씩 나눠주면서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런데 백성들은 저를 미워하여 그의 왕 됨을 원치 않았다. 세월이 지나 귀인이 왕위를 받아 돌아왔고, 왕은 자신의 종들을 불러 어떻게 장사를 했는지 확인을 했는데, 어떤 종은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고, 어떤 종은 다섯 므나를 남겼는데, 어떤 종은 장사도 하지 않고 주인이 준 한 므나를 수건에 싸두었다가 그것을 그대로 가져왔다.
주인은 한 므나로 장사하여 열 므나, 혹은 다섯 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고을을 다스릴 권세를 주었고, 장사도 하지 않고 주인이 준 므나를 그대로 가지고 온 종에게는 심한 책망과 함께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여기서 주인의 지시에 따라 장사를 해서 므나를 남긴 종과 아예 장사도 하지 않고 주인이 준 것을 도로 가져온 종의 심리를 파악해 보자. 그 당시 사회 분위기는 주인이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기에 주인의 지시를 따른다는 것은 종의 입장에서는 별 유익이 없었다. 그가 왕위를 받아 온다고 해도 백성들이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왕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 가운데서도 어떤 종은 부지런히 주인의 지시에 따라 장사를 해서 열 므나, 혹은 다섯 므나를 남겼다. 그러나 전혀 장사도 하지 않고 주인이 준 므나를 수건에 싸 두었다가 그것을 주인에게 되돌려준 종이 있었다. 만약 우리가 마지막 결과를 모른다면 이 두 부류의 종 중 누구를 현명하다고 생각했을까? 말을 바꿔보자. 내가 종의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주인이 정말 왕위를 받아 돌아올지 아닐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혹 돌아온다 해도 왕이 될 확률은 거의 없다. 백성들이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장사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만에 하나 그가 왕이 되어 돌아온다면 그가 준 므나를 반납하면 자신이 크게 책망들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해서 한 므나를 수건에 꽁꽁 싸 두고, 주인의 지시와 상관없이 자신의 일을 하면서 살았다.
성도는 현실을 살펴 판단하고 행동하는 자가 아니라 주님이 주신 약속만 믿고 사는 자다. 왜냐하면 세상 전체를 주관하시고 다스리는 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이 세상도 그 영광도 다 사라지지만 오직 주의 말씀은 영원하다(사40:7-8).
예수님의 왕 됨을 원치 않는 자(원수)는 영원한 심판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왕은 세상 왕처럼 화려한 복장으로 높은 자리에 앉아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종의 모습으로 섬기며 백성을 위해 대신 생명을 주시는 분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아버지의 보내심에 따라 이 땅에 왕으로 오셨다. 그러나 힘과 권세로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힘없이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셨다. 이처럼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목자가 진정한 양의 목자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들의 상식과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기에 약속을 믿고 따르는 자가 아니라면 결코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할 수 없다. 고운 모양도 없고 흠모할 만한 풍채도 없이 이 땅에 초라하게 오셨고, 머리 둘 곳도 없이 떠돌다가 비참하게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신 그를 누가 메시아로 영접할 수 있겠는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는 ---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1:12-1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