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에 의하면 문둥병자는 성 밖으로 나가 살아야 했고, 혹시 건강한 자들이 자기 가까이 다가오면 ‘부정하다’고 외쳐 스스로 자신의 신분을 밝혀야 했다. 본문에 등장하는 열 명의 문둥병자가 길을 가시는 예수님을 멀리서 보고 외친 이유가 이런 규례 때문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은 그들을 부정한 자라고 외면하거나 무시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의 질병을 고쳐 주셨다.
사건의 순서로 보면 문둥병자가 예수님께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먼저 요청했고, 이에 대해 예수님은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셨고, 예수님 말씀에 따라 문둥병자가 제사장을 향해 가다가 문둥병이 깨끗함을 받았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 대목은 예수님의 말씀이 당시 율법을 어기는 지시를 하셨다는 것이다. 문둥병자가 제사장을 찾아갈 때는 병이 다 나아 깨끗하게 되었음을 확인받기 위해 찾아가는 것이지 병을 가진 상태에서 치료받기 위해 나아갈 수는 없었다(레 14장 참고). 그런데 예수님은 문둥병을 앓고 있는 자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셨다.
그럼 왜 예수님은 율법에 따르지 않고 순서를 뒤바꿔 명령을 내리신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약점을 잡아 넘어뜨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그런 자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고의로 율법을 어기는 이유가 무엇인가? 어차피 문둥병자를 고쳐주시려면 먼저 그들 몸을 깨끗하게 하신 후에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시면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인데, 굳이 순서를 뒤바꾼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들이 율법을 오해하고 있음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율법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보여주는 것이지 율법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문둥병자가 제사장에게 가서 자기 몸을 보이는 경우는 깨끗함을 받았기에 그것을 최종적으로 확정받기 위함이다.
구약의 제사장은 질병을 깨끗케 할 능력도 없고, 죄를 용서할 권한도 없다. 그러나 진짜 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죄를 사하시고 질병을 깨끗케 하시는 분이다. 즉 예수님이 진짜 제사장이란 사실을 이 사건을 통해 보여주셨다. 문둥병자들은 제사장이신 예수님께 자신의 몸을 이미 보였고, 예수님은 그에게 온전하게 되었다고 선언하셨다.
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예수님과 문둥병자의 만남은 죄를 용서하시는 주님과 죄인의 만남이다. 구약에서 죄인의 모습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두 질병이 문둥병과 유출병인데, 문둥병은 외형적으로 보이는 질병이고 유출병은 내면적 질병이다. 즉 인간의 안과 밖을 가릴 것 없이 전부가 죄로 뒤덮여 있음을 알려주신 것이다.
문둥병자와 예수님의 만남은 더러운 죄인과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과의 만남이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42:17).”는 예수님의 말씀이 온전히 현실화 된 장면이다.
그런데 문제는 온전하게 된 열 명 중에 사마리아인 한 명만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드렸다는 것이다. 이 일에 대해 예수님은 물으셨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문둥병자는 자신의 몸이 깨끗하게 되어 건강한 모습으로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것을 간절히 원했다. 그런데 그 소원이 성취되었으니 그들은 기뻐 가족에게로 달려갔을 것이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은 예수님께 돌아와 발아래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문둥병자의 입장에서는 자기 몸이 온전케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깨끗하게 된 자 중 한 명은 예수님께 돌아왔다.
여기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병 나은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진정 주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주님께 찾아온 사마리아인이 있었고, 그를 향해 주님이 하신 말씀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는 것이다. 이 말씀의 의미는 ‘너에게 준 선물(믿음)이 너를 온전케 했다.’는 것이다.
믿음은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다. 내가 믿음을 가졌기에 하나님이 구원을 선물로 주신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 전혀 사실과 다르다. 주님이 주신 선물(믿음) 때문에 구원이 발생한다. 그러니까 시작부터 끝까지 주님에 의해 모든 것이 이뤄진다. 주님으로부터 믿음을 선물 받은 자가 주님과 더불어 영생할 자, 즉 구원 받은 자이다.
병 나은 것으로 기뻐할 일이 아니라 병을 낫게 하신 분이 누구인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완악한 죄인인지 알아야 한다. 율법을 열심히 지켜 구원 얻으려는 자들을 향해 주님은 당신이 믿음을 선물로 제공할 때만 구원된다는 것을 선포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