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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이능우
Subject   강남강의 중 표현
강남강의 중
표현

누가 믿음이 없느냐 하면은 지금 도마 빼놓고 나머지 11제자가 믿음이 없어요.
탈자연이 되면 탈자연은 구심점을 갖게 돼요. 이 구심점은 뭐냐 하면은 놀랍게도 인물이 되는 겁니다. ‘인물’.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뭔가 대상이 있고 그걸 내가 인정하는게 신앙이 아니고 결국 뭐냐 하면 이게 관계에요 ‘관계’. 특정 인물과의 관계.
 지금 도마 빼놓고 나머지 제자들은 지금 예수님 오신걸 부활한걸 봤다는 거에요. 그거는 아무 관계를 형성해주지 않았습니다. 내가 봤다는 겁니다. 그야말로 경험주의자에요. 오히려.
 관계맺음에서 그 시발점을 자기로부터 시작해서 도달되는 결론도 내가 잘되겠지. 내가 보존되겠지 하는 식으로 하는게 이게 잘못이에요.
내가 내 가치를 챙기고자 하는 이것은 천국에서는 그건 하나님의 정상적인 관계로 보지를 않아요.
그럼 뭐가 와야 돼요? 뭐가 무너져야 돼요? 나는 내 가치를 내가 유지해야겠다는 것이 새로운 관계에 돌입되면서 이게 내 생각이 무용지물이 되는 상태에 돌입되는 것. 이게 바로 ‘믿음’이거든요. 그런데 그 믿음은 제자들에겐 믿음이 없어요.
 예수님에 의해서 숨을 내쉬어서 성령을 받으라 하잖아요. 그럼 이렇게 생각하시면 제일 편하고 좋습니다. 뭐냐 하면 부활이 되었기에 본격적으로 죽음을 찾는다. 부활이 되었기에 죽음이 무효가 되는게 아니고 반대로 본격적으로 부활되신 분이 자기가 거쳐온 죽음을 재대로 거기에다가 자기 백성들에게 전환시켜야 되는 이유가 관계가 그래서 맺어지거든요 관계가.
부활의 세계에 참여 하려면 성령을 받아야 되는데 성령의 역할이 뭐냐 하면 그 나의 행복 나만의 행복을 어떻게 하느냐 하면 죽여버려야돼요
예수님이 갖고 있는 그 부활의 능력은 죽이는 동시에 예수님이 갖고 있던 그 주님 중심을 그 안에 집어넣을 수 있는 내용도 성령 안에 함께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성령 안에.
 죽여놓고 이제는 살리는게 이거는 너 행복 중심이 아니고 예수님 중심의 복을 받는 그러한 능력까지 부활의 능력 안에 들어 있어요.
처벌을 받았다는 말은 내가 잘못해서 처벌받는게 아니고 내가 수립한 관계가 하늘나라에 쓸데없는 관계였다는 그 점을 밝히면서 처벌하는 거에요
 이미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그 사람 속에다가 집어넣어 버리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이 땅에서 존재하고 서울 땅에서 사는 이것도 나를 위해서 사는게 아니고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알리기 위해서 내가 이 땅에 사는 것이기 때문에 내 인생이 아니고 누구의 인생? 주님의 연속된 주님의 인생 부활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겁니다.
살았지만 사실은 죽은 자고 죽었지만 사실은 영원히 살아있는 모습’. 그런 모습으로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으라 해놓고 그 다음에 성령을 받은 대표적인 모델로서 관계 설정에 나서는 대표 인물이 바로 도마라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도마가 전형적인 영어로 ‘prototype’ 이라고 하는데 전형적인 것. 모델적이다 모델. 전범적인 것, 메뉴얼적인 것. 가장 전형적인 신앙인은 바로 도마입니다.
왜냐하면 도마는 관계를 자기로부터 시작하는 그 관계를 유지해주기 때문에. 내가 보지 않으면 믿지 않겠다 해서 솔직하게 자기는 어떤 관계망 속에 나는 놓여 있음을 도마가 노골적으로 다 보여줍니다. 있는 그대로. 이 말은 내가 스스로 치료 기회를 내가 갖겠다는 뜻이 아니에요. 얼마나 그점이 참 주님 보시기에 훌륭한 점인지. 내 인생을 내가 손대가지고 내가 고치겠다는 생각 일체 없어요. “나 이것밖에 안돼” 라는 것을 아주 자신만만하게 노출시킵니다.
믿을 수 있는 것을 다 발라내세요. 믿을 가능성이 있는거 다 끄집어내세요. ‘야 이건 믿을만 하네’ 그걸 다 제껴버리란 말이죠. 다 버리면 뭐 남는게 있을거에요. 그건 ‘나의 무능성’이죠. 그게 바로 믿음 아닙니까. 그게 바로 오늘 도마가 보여주는 거에요. 좋다는 것을 다 끌어 모으지마세요. 좋다는 것을 다 끌어 모아봤자 그거는 오히려 진짜 좋은 것을 못 믿게 만들어 버리는 하나의 미세먼지 같은거에요. 미세먼지 정도가 아니라 깜깜한 답답한 먼지 같은 겁니다. 그런데 현혹되어 버리면 믿음도 없으면서 믿는 자라고 착각하고 있어요.
 예수님을 믿을 건덕지를 하나도 없게 만들게 까발리는 그것이 성령이 와서 알려주는 십자가의 의미에요.
 관계란 예수님 중심으로 돌아가는 관계. 그 관계가 바로 주님과 자기 신랑과 신부를 맺은 믿음의 관계라는 겁니다. 따라서 그 믿음의 관계라고 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인간 쪽에서 주님을 붙들려고 하는 모든 관계는 뭐로 되느냐 하면 결국은 내가 믿는 만큼 실망으로 이어져야 되겠지요.
 하나님의 약속이 나를 낳았다고 해줘야돼요.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주님의 시간은 미래에서부터 주어지기 때문에 주께서 주를 위하여 다말이라는 저 우리 어머니를 이용해서 주께서 주의 자식을 낳았다 이렇게 봐야 되는 겁니다. 복잡해요 믿음이라는게.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믿습니다가 아니라 관계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하는게 믿음입니다.
관계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천국가는 관계가 믿음이 안되는 것은 내게 문제있어요 내가. 내가 자꾸 살았다고 여기니까 내가 살아있는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믿음에 포함이 되지 않는거에요.

 도마가 나머지 10제자를 대표해서 도마가 믿음, 자기가 현재 기존의 관계망, 기존의 사람들이 이렇게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이렇게 오해했습니다 우리들도 이렇게 오해하고 이걸 믿음이라고 여겼습니다라고 하는 그 모든 관계를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걸로 해요 표현.
 
도마가 주님 앞에 제시한 것은 이겁니다. 내가 표현한 방식에 주님이 걸려들지 아니하면 나는 믿지 않겠다. ‘표현’. 오늘 제목은 표현입니다.
인간은 살아있는 한 표현이 중지되지 않습니다. 뭐 꼼지락 꼼지락 뭔가를 표현해요. 그 표현이 그 사람이 현재 살고 있는 얽혀 있는 관계망을 전부다 대신 다 발산하고 있는겁니다. 이 말은 뭐냐 하면은 반대로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성령이 오고 난 뒤에 꼼지락 꼼지락 뭘 해도 그게 뭐가 되느냐 하면 전부다 주님의 관계를 보여주기 때문에 그게 신앙이 되는 거에요.
 도마가 믿음을 자기 표현을 통해서 나 다움, 자기 자신다움 내 관계를 표현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나타냈다면 예수님은 도마의 새로운 표현을 통해서 주님께서 도마를 통해서 튀어나온거에요.
성령받은 12제자를 통해서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지금 계속 튀어나오게 하는 겁니다.
나를 통해서 주님이 주님의 손이 뻗어나오고 발이 뻗어나오고 주님의 생각과 마음과 모든걸 뻗어나오도록 우리를 사용하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용서가 용서하는 피로 남기 위해서는 우리는 뭐 해야되느냐 하면 없는 죄를 계속 주님의 지시에 의해서 계속 죄를 지어야하는거에요.
기존의 관계망, 믿음도 아니면서도 그걸 내 중심으로 믿어왔던 그 죄. 그 죄가 계속 발각되야 되는 거에요.
기존의 세속적인 관계망에서 요구하는 우리는 자아성을 위하여 자기 행복을 위해서 우리는 꾸준히 살아오고 있고 또 살아가고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몰랐던 죄에요. 하나님을 위한다는, 찬양한다는 그 모든 발언과 행동 속에서 어제까지 몰랐던 죄가 새롭게 그 안에 담겨있음을 오늘로 발각당할 때 우리는 그걸 은혜받았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도마는 전형적인 ‘나’ 라는 것이 알게 되었는데 왜 전형적인 ‘나’로 규정되느냐 하면 도마가 예수님의 그 죽음을 통해서 새로운 관계망 속으로 진입해 들어간거죠.
산다는 것은 내 죽음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인데. 오히려 살아있는 것을 이상하게 덤으로 여기는 그 태도. 그것은 바로 없음(보지않고)의 중심으로 돌아가는 새로운 세계의 부합되는 태도입니다. 왜그러냐 하면 예수님이 지금 없는 식으로 세상을 관리하기 때문에 그래요. 없는 식으로.
그러면 없는 분이 죽었다가 부활하신 분이 그게 없는 분이거든요. 보이지않는 분. 여기 나오지요.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이 있다고. 보이지 않고 없으신 분이 있음의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은 있음에 매달려 살아가는 사람들은 전부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긴 사람들이에요. 사실은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악마의 추종자로 살아온 겁니다.

 결국에 이건 뭐냐 하면 관계망 싸움입니다. 우리가 없는 분 중심이냐? 아니면 있는 사람들 중심이냐의 그 싸움이 영적싸움으로 계속 이어지는 거에요.
 주님 보시기에. 역사가 나오면 불신앙이고 이미 자기가 살아있는게 산게 이상할 정도로 이건 무슨 내가 계속 살면 안되는데 할 정도로 살아있다는 그 자체가 감사가 되면 신앙이 되는 겁니다.

 역사에 맡기지 말고 자연에 맡깁시다. 자연은 중심이 있다고 했습니다. 자연은 누가 중심이냐? 바로 보이지 않는 분이 중심이에요.
지금 시작을 내 쪽에서 시작해서 천당 갈 생각하지 말고 이미 저쪽에서 이미 개시했다는 겁니다.
그 개시할 때 어떤 그물이 내려온다 고기잡는 그물인데 그 그물이 관계망이고 그걸 제가 아까 믿음이라고 했지요. 그 그물망이 내려오게 되면 내가 생각해도 내 육의 본성과 전혀 다른 표현들이 나와요. 표현들이. 표현이란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이게 해석이 나오는데 그 해석이 항상 역사가 아니고 비역사적에요. 단절되어 있습니다. 딱딱 끊어져 있어요.

 그런데 말씀은 뭐냐 하면 말씀은 뭐를 깬다? 이게 어려워요. 말씀은 뭘 깨겠습니까? 예상과 예측을 깨지요. 그 말은 뭐냐 하면 뭐를 깬다? 역사를 개무시해버리는겁니다 역사를. 역사를 앞에서 와서 역사를 다 갉아먹어요. 쥐가 마우스가 치즈를 갉아 먹듯이. 남겨져 있는 자아 안에 있는 역사를 성령이 와서 다 갉아먹어요. 없애버린다고요.


그건 무슨 역사냐? 바로 죄의 역사죠. 거짓선지자의 역사 악마의 역사죠. 악마의 역사를 갉아 먹어주지 아니하면 우리는 성도라고 할 수 없어요. 갉아먹으면서 나오는 표현이 뭐냐 하면은 바로 신앙적 표현이에요. 나는 믿지 않았다. 보지 않고 믿지 않았다. 그래서 도마가 신앙인의 모델이 되는 거에요. 나는 보지 않고서는 믿지 않았다.
 예수님이 늘 같이 다니는건 아니잖아요. 나타날 때만 나타났지요.
이건 뭐냐 하면 나타남이 이거는 안해도 될 일을 하신 거고 없는 분이 없는 분이지만 나의 있음보다 더 있음으로 인식할 수 있는 관계망.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망 그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겁니다.
대자연은 없는 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따라서 이것은 우리 자신은 주님의 표현이다. 나는 주님의 해석이다. 또는 주님의 의미다
그래서 성도는 ‘고귀한 존재’입니다. 천사들도 부러워할 정도로 고귀한 존재. 이 세상에 가장 고귀한 존재가 성도에요. 왜? 없는 존재니까. 인간이 예상을 하지를 못하는 존재이고 예수님이 예상했지만 다른 어떤 인간도 내가 이렇게 달라질 줄은 나도 예상 못했어요. 모든 종교적인 행위를 손에서 놓을지 어떻게 예상을 했겠습니까?
벽돌있는 고딕건물을 교회라고 여겼지 교회가 아닌걸 어떻게 알았겠어요. 역사가 있는 신학과 교리가 역사의 전통성 때문에 그게 진리인줄 알았지 그게 그거 때문에 바로 비진리라는것을 어떻게 알았겠어요. 우리 능력입니까? 우리가 예상한거에요? 예상하면 그건 가짜에요. 사람이 흉내내고 모방하는 것은 어떤 예상된 결과를 내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흉내내기를 시작하는 겁니다.
 은연중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는 주님 생각 안하고 이미 내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마지막 이 말씀하고 마치겠습니다.


어느새 내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을 누가 발견한다? 내가 발견할 때 이게 바로 도마의 신앙입니다. 전형적인 옳은 신앙입니다. 나는 보지 않고서는 믿지 않는 이런 족속에 불과했었습니다를 그걸 고칠 생각하지 말고 그걸 안다는 그 자체가 성령이 임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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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5.02 -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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