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의 출생과 사가랴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본문의 내용이다.
가브리엘 천사의 예언대로 엘리사벳은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행하기 위해 이웃과 친족들이 모였고, 그 자리에서 아이 이름을 짓기 위해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로 하자는 제안이 있었으나 어머니 엘리사벳은 ‘요한’으로 지으려 했다. 친족 중에 이런 이름은 없기에 이상하게 여기면서 사가랴의 의견을 물었고, 벙어리가 된 사가랴는 글을 써서 ‘요한’으로 짓기를 원했고, 결국 그 아이는 요한이 되었다.
아이 이름을 요한으로 지은 것은 부모의 의사가 아니라 주의 천사가 사가랴에게 나타나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13절)”는 지시에 따른 것이다. 그러니까 이 이름은 하나님이 지어주신 이름이고, 요한은 출생 전부터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한 사명을 갖고 태어날 자임을 사전에 고지 받고 태어난 자이다.
그러니 요한의 출생은 늦둥이를 낳게 된 아비나 어미의 기쁨으로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성취된 놀라운 사건이기에 사가랴는 자식의 출생과 더불어 입이 열렸고, 그는 하나님을 찬양했다.
찬양의 내용을 보면,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대로 구원자를 보내신 것(메시아가 출생할 것)에 대해 찬양했고, 그 일의 일환으로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태어난 아들(요한)은 하나님의 긍휼 때문임을 고백하고 있다.
인간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사가랴의 반응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솔직하게 말해보자. 자식을 낳지 못하다가 나이 많아 자식을 낳게 되었다면 무엇보다 먼저 그 아이의 출생을 기뻐하며 감사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그런데 사가랴는 자식 낳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고, 자기 자식은 메시아의 출생을 예비하는 자로만 보고 있다.
이것은 사가랴의 인품이 훌륭하거나 신앙이 돈독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믿음 좋은 사람이라면 천사가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라’는 말에 불신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고, 벙어리가 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사가랴의 찬양은 “성령의 충만을 입어(67절)” 일어난 독특한 사건이다. 그러니 성령이 임해서 나오는 반응을 인간의 자질로 평가할 수는 없다.
굳이 ‘성령의 충만을 입어’라는 말을 덧붙인 이유는, 성령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을 밝힌 것이다. 그리고 또 주목해야 할 부분은 성령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높이도록 한다는 것이다. 성령 받은 사가랴는 자기 혈육인 아들은 뒷전이고 예수님을 주목하고 있다. 이것은 자신의 겸손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며, 아들이 소중하기에 메시아를 먼저 높이는 술수를 써는 것도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임한 자는 오직 예수님만 높이고 주목하게 된다. 그러기에 성령 받은 사가랴는 아들의 출생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의 출현을 기뻐하고 있고, 아들은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역할을 받았기에 그의 출생 또한 하나님의 긍휼로 인정하고 감사하고 있다.
1장을 마무리하면서 ‘성령이 임한 자들’의 면면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세례 요한은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15절)”을 입었고, 태중에서부터 메시아를 찬양한다(41절). 그리고 마리아는 성령이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그를 덮쳐 하나님의 아들을 낳게 된다(35절). 엘리사벳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메시아를 잉태한 마리아를 향해 놀라운 찬양을 한다.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복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41절).”라고. 사가랴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맹세를 이루신 하나님을 찬양(67절)’했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예비할 자를 보내신 것(76절)’을 찬양하고 있다.
성령이 임한 자는 누구도 예외 없이 메시아를 높이고 있다. 이 말을 다른 측면에서 보면 자신은 온데간데없고 메시아만 주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으로는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인간은 자신을 사랑하고, 높이고, 주목한다. 그런데 요한, 마리아, 엘리사벳, 사가랴는 예수님만 높인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것은 성령이 임했기 때문이다. 즉 육의 본성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 성령을 받은 자처럼 행하려 해서는 아니 된다. 우리는 본성대로 자신을 높이고 사랑하며 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죄인에게 성령이 임하니 본성과는 전혀 다른 행동이 나온다. 내가 아닌 주를 높이고, 나는 주를 높이는 도구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성령이 임해야만 주님을 높이는 주의 백성이다.